[안승준의 다름알기] 내일부터 보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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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광경 ⓒ픽사베이
▲일출 광경 ⓒ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헬렌 켈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수필에서 신이 자신에게 허락할 사흘 동안 보고 싶은 아름다운 장면들을 나열했다. 평생의 은인인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고, 박물관과 밤하늘의 별도 보고 싶어 했다.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광경, 일터에 나가는 사람들의 분주함도 그녀가 꼭 보고 싶었던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하다고 느껴지지 못할 만큼 익숙한 일상의 순간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그녀에겐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꿈같은 바람이었다.

‘만약 잠시라도 볼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은 시각장애인인 내게도 이따금 던져지는 단골 같은 물음인데 그때마다 나 또한 헬렌 켈러와 비슷한 마음으로 상상에 빠져든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고, 소중한 이와 함께 나누지 못했던 여행지의 경치를 보고 싶고, 귀로만 들어서는 명확히 떠올릴 수 없었던 바뀐 세상을 보고 싶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떤 평범한 이가 ‘엄청난 부자로 살 수 있다면’을 떠올리듯 잠시간의 상상일 뿐 늘 시력이 좋은 사람의 삶을 동경하거나 갈망하지는 않는다. 눈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상태에 비해 나은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눈이 보이는 사람의 삶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약 시력이 좋은 이들의 삶이 시각장애인의 삶보다 객관적으로 나은 상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시급히 바꿔가야 할 우리 사회의 과제라고 주장하고 싶다.

평범한 사람들이 넘치도록 가진 사람들의 삶을 궁금해하면서도 그들의 삶을 늘 동경하지 않는 이유는 돈을 많이 가진다는 것이 더 나은 인생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당한 만큼 버는 사람들은 값비싼 옷을 입고 진귀한 음식을 먹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남들보다 넉넉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입을 거리와 먹을거리는 해결할 수 있도록 세상은 설계되어 있고 또 그 방향으로 더 나아지고 있다.

헬렌 켈러는 수필의 말미에 시각이나 청각 혹은 또 다른 감각들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오늘까지만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상상해 보기를 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글로 인해 스스로가 가진 감각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며 감사했을 것이다. 그것은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삶이 끔찍할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전제에 동의한 것일 것이다.

‘서점에 가서 책을 살 수도 없고 가고 싶은 곳을 혼자서 갈 수도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직장을 가지지도 못할 것이다.’라는 정도의 상상을 한 사람들은 장애 있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비해 현격히 나은 자신의 삶에 감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보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을 품지 못한 세상의 문제이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고 귀가 들리지 않게 되더라도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면 헬렌 켈러의 수필은 조금 덜한 울림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볼 수 없다는 것에 비해 의학적으로 분명히 더 나은 상태이므로 어떤 세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헬렌 켈러는 ‘만약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상상하겠지만 밤하늘의 별도 밤이 낮이 되는 웅장함도 일터에 나가는 이들의 분주한 모습도 다른 감각들로 느낄 수 있고, 남들의 몇 배의 노력이나 설리번 선생님 같은 기적적인 만남이 없더라도 남들처럼 살 수 있었다면 그녀의 수필은 간절한 바람보다는 단순한 궁금증이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갑자기 내일부터 보이지 않게 된다면…’을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좌절이나 실패로 상상되지 않는 세상이길 바란다. 엄청난 부자가 내일부터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을 상상하는 정도의 달라짐이었으면 좋겠다.

부자에게서 큰돈이 사라진다는 것은 큰 충격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상상 속에서 내일부터 살게 될 평범한 삶이 그 자체로 좌절이나 끔찍함은 아닐 것이다. 불편하긴 하겠으나 그로 인해 내일부터 평범해질 수 있으니, 오늘 가진 돈을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내일부터 보이지 않게 된다면’을 상상했을 때 오늘의 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끼게 되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떻게 살 수 있는지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장애 있는 삶이 의심할 필요도 없는 비참한 삶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부터 보이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그 삶이 특별히 나쁘지 않은 괜찮은 모습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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