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② 탈시설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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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roup of people holding signs in front of a building
▲5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입구에서 혜화동성당 종탑 고공농성자(민푸름, 이학인 활동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기각을 촉구하는 요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전장연 제공
  • 천주교 혜화동 성당 점거 고공농성이 남긴 과제

[이정훈 에큐메니안 편집장]

탈시설 담론: 유럽의 기원과 발전

활동가들이 주장하는 탈시설은 장애인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전환해 자율과 포용을 보장하는 운동이다. 이 담론은 유럽에서 20세기 중반 시작되었다.

* 주요 발전 (1970-80년대): 1970년대 이탈리아의 1978년 법 180은 프랑코 바살리아의 주도로 정신병원을 폐쇄하고 지역 정신보건 서비스로 전환, 세계적 개혁을 촉발했다. 영국은 1980년대 대처 정부의 지역사회 돌봄 정책으로 대형 시설을 폐쇄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실행이 미흡했다.

* 철학적 기반: 어빙 고프먼의 1961년 저서 《Asylums》는 시설을 개인의 정체성과 자율성을 박탈하는 “전체 기관”으로 비판했다. 벵트 니르예와 울프 울펜스버거의 정상화 원칙은 평등한 생활 조건의 권리를 강조했다.

* 현대 (1990년대-현재): 2006년 UN CRPD는 탈시설을 인권으로 규정, 한국 등 조약국에 지역사회 포용을 의무화했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대형 시설을 대부분 폐쇄했지만, 동유럽은 자금과 문화적 태도 문제로 뒤처져 있다. 1989년 설립된 유럽 독립생활 네트워크(ENIL)는 개인 예산과 동료 주도 서비스 등 자율적 지원 체계를 촉진한다.

유럽의 경험은 탈시설 성공을 위해 접근 가능한 주거, 개인 보조, 사회 서비스 등 강력한 지역사회 인프라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자금 부족으로 인한 노숙이나 부적절한 돌봄 같은 실패는 한국 종교 기관의 우려를 반영한다.

종교의 시설 운영이 시대에 맞지 않는 이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한국의 선교 초기, 천주교와 개신교는 국가 복지 인프라가 없던 시기에 고아원, 병원, 장애인 시설을 설립하며 사회적 공백을 메웠다. 이는 자비와 연민의 기독교 가르침에 부합하며 사회적 신뢰와 도덕적 권위를 얻었다. 그러나 현대적 맥락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 복지 패러다임의 변화: CRPD와 글로벌 인권 프레임워크는 자율성을 가부장적 돌봄보다 우선시한다. 잘 운영되는 시설조차 자율성을 제한하고 주민을 분리해 이러한 원칙과 양립하기 어렵다.

* 구조적 이해충돌: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에 의존하는 종교 시설은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제적 유인을 가진다. 이는 시설 이익이 주민의 권리를 앞설 수 있는 “복지 장사” 모델이라는 비판을 낳는다.

* 종교의 역할 변화: 자비는 여전히 핵심 교리지만, 현대 종교 기관은 구시대적 시스템을 유지하기보다 체계적 변화를 옹호해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탈시설 지지는 이러한 전환을 촉구한다.

* 사회적 기대: 한국의 장애인 인권 운동과 젊은 세대는 포용과 투명성을 요구하며, 시설 중심 돌봄을 덜 평등한 시대의 유물로 본다. 혜화동 농성 지지 천주교인 1,000명 이상의 연서명은 종교 내부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선을 좁힐 수는 없을까

천주교와 개신교의 장애인 거주 시설 운영은 한때 필수적이었으나, 글로벌 장애인 인권 운동의 자율과 포용 원칙과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혜화동 농성은 이 전환점에서 활동가는 탈시설을 권리로, 천주교는 취약자 보호를 주장하며 갈등을 드러냈다. 양측 모두 타당한 우려—활동가는 체계적 배제, 천주교는 지역사회 지원의 공백—를 제기한다.

특히 탈시설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거, 지원 서비스, 사회 통합 인프라의 부족 문제는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현실적 과제이다. 유럽의 탈시설 경험은 성공적 전환을 위한 강력한 인프라의 필요성을 가르친다. 종교 기관은 투명성을 수용하고 지역사회 기반 솔루션을 지지하며, 장애인을 보호하기보다 권한을 부여하는 사명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야만 급변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창립 가치에 충실할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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