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휠체어를 닦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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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잎을 가진 네 그루 나무 사이로 입구가 흰색으로 지워진 직사각형 건물이 서 있다. 하늘과 구름은 뿌옇게 흐린 색을 띄고 있다. ©김소하 작가
▲푸른 잎을 가진 네 그루 나무 사이로 입구가 흰색으로 지워진 직사각형 건물이 서 있다. 하늘과 구름은 뿌옇게 흐린 색을 띄고 있다. ©김소하 작가

  • 휠체어 이용 당사자와 그를 둘러싼 모든 분에게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전동휠체어를 위에 뿌연 먼지가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마치 어깨 위에 내려앉은 하루의 피로 같았어요. 피로를 날려버리듯 걸레로 휠체어를 한두 번 문질러보니 금세 누렇고 시커멓게 변해버렸어요. 그제야 5월이 온 것이 실감 났어요.

이맘때가 되면 나무는 연둣빛 새잎을 자랑하고, 꽃들은 앞다투어 피어나요. 봄바람은 향긋한 꽃내음을 실어 나르고, 따사로운 햇살은 사람들의 옷차림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요. 거리와 공원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일상 곳곳에 생기가 넘쳐요. 하지만 봄의 화사함 뒤에는 조용히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어요. 바로 꽃가루와 미세먼지예요.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일상을 눈에 띄지 않게 파고들어 건강을 위협해요. 특히 초미세먼지는 그 존재조차 감지하기 어려운 만큼, 위험도 커요. 눈에도 잘 띄지 않고 손에도 잡히지 않지만, 초미세먼지는 폐를 지나 혈관 깊숙이 스며들어, 우리 몸을 조용히 위협해요. 호흡기 질환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심혈관계에 부담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면역력까지 떨어뜨릴 수 있어요.

꽃가루도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어요. 특히 저처럼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갑자기 튀어나오는 재채기, 멈추지 않는 콧물과 코막힘은 일상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할 때는 외출 자체를 두렵게 만들어요. 누군가에게는 봄이 반가운 계절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런 오염물질들은 실외에만 머무르지 않아요. 실내 공간은 물론, 우리의 생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쳐요. 특히 휠체어나 보장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민감한 문제예요. 휠체어는 매일같이 도로와 인도를 지나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양한 환경에 노출돼요. 그 과정에서 외부의 먼지, 꽃가루, 분진, 매연 같은 오염물질들을 고스란히 실내로 끌고 들어와요. 집이라는 안락한 공간이 순식간에 오염되는 것이죠.

그래서 가능한 한 매일 휠체어를 닦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만약 직접 닦기 어렵다면, 장애인활동지원사나 가족의 지원을 받아도 돼요. 굳이 대단한 청소가 필요하진 않아요. 외출 후 현관 앞 매트 위에 바퀴를 몇 번 굴려주거나, 젖은 걸레로 휠체어의 주요 부분을 가볍게 닦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상황이 된다면 ‘바퀴 커버’를 활용하거나, ‘실내용 휠체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실내 공기 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요. HEPA 필터가 장착된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면 공기 중의 미세먼지와 꽃가루를 효과적으로 걸러낼 수 있어요. 물론 필터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교체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죠. 여기에 가습기를 함께 사용하면 실내 습도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어 공기 중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피부나 호흡기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요. 물론 외출 후 손과 얼굴을 씻는 것 또한 중요한 습관이에요. 몸에 쌓인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단순한 행동이지만, 건강을 지키는 데 효과적이에요.

이런 일상의 작은 실천들이 별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휠체어를 닦아요!”라는 제안은 단순히 청결을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건강한 삶을 위한 능동적인 실천이며, 궁극적으로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첫걸음이에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나쁜 환경에 살아야 할 이유는 없어요. 누구든지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고, 그 권리는 자발적 실천에서 비롯돼요. 스스로 휠체어를 닦을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누군가의 지원을 받아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거예요.

5월, 따뜻한 봄날. 모두 함께 휠체어를 닦아요!

생활 속 작은 실천이 내일을 건강하게 바꾸고,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만들어줄 거예요.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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