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콘클라베, 쿰 클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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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유튜브 cpbcTV 갈무리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었다.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콘클라베(Conclave)가 시작된 지 이틀만이자 네 번째 투표 끝에 교황청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제267대 교황의 등극과 함께 시작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선출된 교황은 역사상 첫 번째 미국인이다.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 추기경, 그는 교황 즉위명을 ‘사자’를 뜻하는 ‘레오(Leo)’로 정하고 세상을 향해 강인한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듯 성베드로 대성당 중앙 ‘강복의 발코니’ 앞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세상은 교황 레오 14세가 미국인이라는 점에 놀랐다.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세속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 때문에라도 미국인 출신 교황은 아닐 것이라고 여러 언론이 예측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되레 미국인이 교황에 선출되었다는 느낌적 느낌이랄까. 어쩌면 교황 레오 14세는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는 세간의 평가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젊은 시절을 페루 빈민가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으며, 2015년 페루 시민권을 얻어 페루 대주교로 임명됐으니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었던 것이니 말이다. 아무려나 레오 14세는 신학적으로는 진보적이고 미국과 대척점에 섰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측근이라는 점과 오랫동안 공화당원이었던 중첩된 가치관이 미국적이지 않은 미국인이라는 모호성과 잇닿아 있다. 이민과 빈민, 전쟁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만 젠더와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불관용 태도를 보이는 양가적(兩價的) 입장인 레오 14세는 결국 거시담론에는 개혁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만은 끝내 지켜내겠다는 보수적인 노구(老軀)의 성직자인 셈이다.

이번 교황 선출에서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콘클라베라는 독특한 교황 선거제도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 자리를 두고 이전투구가 벌어지자 추기경단 중심의 선거방식을 정립시켰고, 현재의 콘클라베 방식은 1268년 3년 동안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자 추기경들을 강제로 한 방에 가두고 빵과 물만 주면서 겨우 교황을 선출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쨌든 콘클라베는 정치적 혼란과 외부 간섭을 줄이고 후보를 정하지 않고 교황을 선출하는 방식인 것으로 보이지만, ‘세속적 욕망을’ 견제하기 위한 고육책인 것만 분명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콘클라베가 끝난 이틀 후 우리나라에서는 현대 민주주의 정당정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을 벌어졌다. 한밤중에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단일화란 명분으로 강제로 교체하려다 무산된 것이다. 해괴한 촌극을 주도한 이들은 친위 쿠데타로 탄핵당한 윤석열의 친위 세력이었다. 이 무모한 쿠데타는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 실패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정치집단이 ‘세속적 욕망’을 위해 스스로 정한 절차까지 무시하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보인 적은 없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 cum(함께),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에서 유래되었으며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한다고 한다. 새벽 시간을 열쇠 삼아 스스로 고립되어 친위 쿠데타를 꾸민 이들과 ‘세속적 욕망’으로 교황 선출이 늦어지자 성당 안에 추기경단을 가두고 열쇠로 잠근 시민들의 갈급한 심정은 ‘가둠’의 방식만 같을 뿐이다.

조기대선이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12·3 내란 사태를 수습하고 사분오열로 갈가리 찢긴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 통합의 길을 찾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애시민 등 소수자들이 대선에서는 가뭇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다시 장애시민 공약은 ‘권리 보장’, ‘이동권 강화’, ‘돌봄 국가책임제’, ‘통합교육 실현’ 등 이제는 실체조자 모호한 내용만 찔끔 보일 뿐이다.

난감하고 지친다.

지난 대선 때에도 또 그 전에도 장애시민 공약은 표현만 다를 뿐 권리를 보장하고 이동권을 강화하겠다고 했으며, 돌봄 정책을 책임지며 통합교육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라고 ‘권리’, ‘강화’, ‘실현’ 따위 현란한 공약들이 난무했지만 매번 흐지부지가 반복되었을 뿐이다. 선거가 끝나면 권리 보장은 먼산바라기요,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체계는 온데간데없다. ‘권리’에는 모르쇠가 되고 ‘강화’와 ‘실현’은 대상자 수를 늘리는 것으로 퉁치고 만다. 콘클라베처럼 대통령 후보들을 ‘열쇠로 문을 잠근 방’에 몰아넣고 스스로 낸 장애시민 공약의 실현을 어떤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지 캐묻고 싶은 심정이다.

쿰 클라비(cum clavis)가 절실한 요즘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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