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사무실 근처에 좋아하는 맛집이 한 곳 있다. 그래서 누군가 사무실에 방문해서 식사를 대접해야 할 때 0순위로 소개하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시각장애를 가진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으니, 이 식당의 주문은 키오스크로 해야 된다는 점이다.
활동지원사와도 자주 이 식당을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주문을 키오스크로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기자가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그러자 활동지원사가 ‘키오스크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다’라며 다음에는 기자가 ‘직접’ 키오스크로 주문할 수 있게 시도해보자고 하셨다. 활동지원사의 말에 혹시라도 혼자 결제하다가 잘못 결제되거나 제대로 주문을 하지 못해서 버벅거리는 건 아닌가 긴가민가하면서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활동지원사와 다시 그 식당을 방문했을 때, 식당을 입장하면서부터 걱정이 몰려왔다. 식당 입구로 들어와 키오스크를 향해 걸어가면서 활동지원사가 식당 안쪽에 있는 직원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제스처 같은데,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것뿐만 아니라 몇 명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 식당은 진짜 맛집이라 늘 사람이 많으니까 기자의 저시력으로는 식당 안에 직원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정말 운이 좋게도 직원이 키오스크 근처에라도 있다면 좀 더 편하게 손가락 하나를 펴보일 수 있을 텐데,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혼자’ 와서 ‘혼자’ 주문하는 걸 직원이 알아서 확인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결론부터 말하면 키오스크에 있는 글자들이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위치’만을 외워서 주문을 해야 했다. 선택할 메뉴가 있는 위치, 주문완료, 확인 등의 위치, 결제하기 위한 버튼의 위치, 카드 넣는 곳의 위치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잘 보고 기억해야만 했다.
일단 이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가 메뉴 중에서 첫 번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메뉴 선택은 금방 할 수 있다. 메뉴를 선택하고나면 카드를 넣어서 결제하기까지 그냥 ‘확인’만 잘 찾아서 두세번 버튼을 터치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드를 넣고 영수증이 나오는 걸 뽑으면 주문 끝! 빈 자리에 가서 메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이 순서만 잘 기억하고 특별한 돌발변수만 생기지 않는다면 단 1분만에 키오스크로 주문을 완료할 수 있다. 키오스크에 나와 있는 글자들을 하나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채, 오직 ‘위치’만을 외워서 터치를 몇 번 하고 카드를 넣는 것만으로 주문을 한다는 사실이 조금 어색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며칠 뒤 지인과 또 그 식당에 갈 일이 있었다. 일전에 혼자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긴 했지만, 선뜻 내키지 않아서 당연하다는 듯이 지인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지인이 키오스크를 터치하면서 기자에게 한번씩 질문을 했는데, 그중 ‘고기 추가’라는 게 있었다. 고기를 더 추가할지 말지를 결정해서 선택해야 하는데, 그 과정까지 활동지원사가 세세하게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런 부분까지 전부 다 감안해서 주문을 ‘혼자’ 한다면 아마 주문이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외워야 할 버튼의 위치가 더 많아지니까.
메뉴에 고기 추가하고, 사이드 메뉴 중에 음료나 뭘 더 추가하는 부분까지 하나하나 다 알게 되면 글자를 보는 게 아니라 위치만으로 주문해야 하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시각장애인이 화면의 글자들을 제대로 보지 않고 버튼의 위치만을 외워서 ‘직접’, ‘혼자서’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어디일까.
계속 혼자 키오스크를 사용하다보면 어느새 고기 추가나 사이드메뉴를 넘어 시그니처 메뉴 외에 다른 메뉴를 선택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키오스크로 혼자 주문을 할 수 있게 된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익숙해지면 또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