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떡뻥 하나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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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디 속에 있는 'Happy' 돌멩이와 노란 민들레 꽃 ⓒunsplash
▲푸른 잔디 속에 있는 'Happy' 돌멩이와 노란 민들레 꽃 ⓒunsplash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내 아들 햇살이는 뭐든 잘 먹는다. 태어난 지 9개월을 넘어가고 있는 요즘 아기의 최애 메뉴 중 하나는 떡뻥이다. 쌀가루를 압력으로 튀겨낸 그것은 우리가 어릴 적 먹던 뻥튀기와 거의 비슷한데 그 과자 하나만 있으면 아무리 서럽게 울고 있다가도 뚝 그친다.

아빠가 백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해서 달래도 끄떡없던 녀석이 조그만 과자 하나에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그런 마력이 있을까 궁금해하던 중 급기야 오늘은 내 입에 한 조각을 넣었다.

아직 어리디어린 아기인지라 소금도 설탕도 그 외에 어떤 조미료도 첨가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수분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바싹 마른 조각은 한 입만으로도 내 입안의 침을 모두 마르게 할 것만 같았다. 무미와 건조 그것은 바로 무미건조로 표현하면 딱 맞을 그런 것이었다. 도대체가 더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내가 지어가고 있을 때도 햇살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으로 떡뻥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사실 떡뻥 사랑은 햇살이만의 일은 아니다. 키즈카페나 문화센터에서 한번 그것을 꺼낼 때면 주변에 기어다닐 수 있는 모든 아이가 과자 곁으로 몰려든다. 움직일 수 없는 아기라도 시선만큼은 하얀 떡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도 그 비슷한 무언가를 나 또한 온 마음 다해 사랑했을 수도 있다. 단맛도 맛보고 짠맛도 맛보고 온갖 화려한 맛들을 경험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담백한 재료 그대로의 맛으로는 행복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햇살이와 같은 떡뻥으로 햇살이처럼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그동안 더 큰 자극으로 더 많이 행복했었기 때문이다. 배달앱을 보며 어느 날 ‘오늘은 왜 이렇게 먹을 게 없지’ 할 수 있는 것은 그 많은 목록 속에 있는 맛있는 음식으로 이미 난 충분히 즐거웠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입맛이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맛으로 느낄 행복을 거쳐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기들은 앞으로 소금 조금 뿌려진 과자에 떡뻥보다 더 한 행복을 표현할 것이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에도 매콤하게 양념 된 무언가에서 세상에 살아있는 진한 감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햇살이가 느끼게 될 모든 감사와 행복은 40년 이상 더 세상을 살고 있는 내겐 이미 넘치도록 주어진 흔한 것들이다. 다만 이젠 그 흔한 것들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는 일을 잃어버렸을 뿐이다.

햇살이의 최애 과자인 떡뻥을 한 조각 더 입안에 물어보았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깊은 고소함이 느껴졌다. 아직도 작은 과자 하나에 햇살이만큼의 웃음을 지을 수는 없지만 작은 아기의 큰 웃음에서 내가 찾아야 할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오늘 검색해야 하는 것은 더 자극적이고 더 새로운 음식이 아니라 어제까지 흔하게 먹었던 음식을 어릴 적처럼 기쁘게 먹어야 하는 마음가짐이다. 매 순간이 새로운 햇살이는 길을 걸어도 사람을 보아도 멀찍이 들리는 소리에도 환하게 웃는다. 나도 오래전 아기였을 때 그랬을 것이다.

떡뻥이 그런 것처럼 조금 더 깊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난 특별히 달라지지 않더라도 훨씬 더 큰 행복 안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으로 크게 웃는 햇살이의 웃음 속에서 놓치고 살던 큰 행복을 찾은 오늘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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