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햇살이는 뭐든 잘 먹는다. 잘 먹는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청 잘 먹는다. 배고픈 것은 당연히 견디지 못하고 음식이 끝나는 순간은 아쉬움 가득한 고함을 지르곤 한다. 음식 가리거나 먹지 않는 것에 비한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더 먹고 싶어하는 아들에게 음식이 끝났다는 것을 단호하게 알려줘야 하는 아비의 마음도 매번 안타깝다.
분유도 과일도 과자마저도 끝을 인정할 수 없는 아이에게 난 모든 음식은 끝이 있단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제 겨우 “엄마 아빠” 정도 하는 9개월짜리 녀석이 그 말을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이라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은 최대한 상냥함을 갖추고 모든 음식에 존재하는 끝의 의미를 말해주려고 한다.
사실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모습들은 어릴 적 내 모습을 너무도 닮았다. 먹고 있으면서도 다음 먹을 것을 생각하고 숟가락을 뜨고 있으면서도 줄어드는 밥을 아쉬워하는 것은 분명히 그 녀석의 아빠인 나를 닮았다. 지금의 내가 어린 햇살이처럼 끝나가는 먹을거리를 보며 매번 슬퍼하지 않는 것은 식성이 줄어든 탓만은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음식에는 끝이 있었다. 음식에 끝이 있다는 것은 기다림에도 끝이 있고 배고픔 또한 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 나의 식탁 위에 있는 그릇들은 바닥을 보였지만 내겐 또 다른 배고픔이 찾아오고 또다시 맛있는 음식들도 따라온다. 끝이 있어야 또 다른 시작이 있고 시작이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말을 해서 그런지 오늘 햇살이의 음식 끝 투정이 조금 줄어든 것 같다. 이유식은 다 먹었지만, 분유와 간식이 또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이유식을 먹고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요거트를 먹고 기뻐하고 아쉬워하고 과자를 먹고 기뻐하고 아쉬워하며 햇살이의 오늘도 저물어 간다.
모든 음식엔 끝이 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끝이 있고 엄청난 배고픔에도 끝은 존재한다. 오늘의 행복함은 저물어가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다음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오늘의 고통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 또한 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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