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의 마음가짐] 삶의 모양을 바꾼 인생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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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갈림길 ⓒunsplash
▲숲속의 갈림길 ⓒunsplash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최병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육부에서 부모님께 특수학교를 권유했다. 두 분이 그곳을 방문해 교장과 면담하고 교실 분위기 살피고 오셨다. 발달장애인 위주로 시행되는 교육 방식이 내가 가진 지체장애 특성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힘들어도 일반학교에 보내기로 합의하셨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 걸음이 힘들어졌다. 그래서 1학년 2학기에 가까운 동네로 이사했다. 한 걸음씩 뒤뚱뒤뚱 느려터지게 걸어서 등하교하다가 4학년부터 엄마가 땀 흘리며 손수 밀어주는 수동휠체어를 타고서 다녔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시 교육부에서 나를 상담하고 지망하는 네 곳을 제출하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반영토록 편의를 제공해 줬다.

적합한 조건은 접근성 좋은 평지와 멀지 않은 통학 거리였다. 엄마는 미리 운전 면허를 따고 도로 연수까지 비용을 들여 만반의 준비를 마치셨다. 경차 프라이드를 타고서 우리 모자는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졸업 후에는 병원 진료와 물리치료를 이십 년 넘게 이어갔다. 차 트렁크에 휠체어를 실은 채 조수석 젖히고 누워서 우린 함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듣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고유한 존재감을 키운 나날이었다.

근육병이 몸의 굴곡과 맘의 방식을 크게 바꿔놓기 전에는 장애가 없었다면 걸었을 삶의 주요한 궤적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권유대로 특수학교에 들어갔다면, 초등학교 근처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지금 중학교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물리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등 의미 없는 가정을 반복하며 내 질병과 장애를 돌이킬 수 있듯 여겼다. 그러면 자신을 잃지 않겠다 싶었다.

나이 먹을수록 정상적 몸과 평균적 맘에서 멀어졌다. 두 손으로 힘겹게 쥐어봐도 속절없이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품었던 눈부신 꿈과 간절한 소원들이 하나둘 구겨져서 영영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쓰린 상실감과 절망감을 아프게 삼키면서 어두운 체념에 빠져서 시간을 허비하거나 어딘지 모를 탈출구를 향해 더듬더듬 기어가곤 했다.

작고 낮으며 하찮아 보이던 연약한 마음과 고독한 정신, 사무치는 영혼. 그 조각난 내면과 황폐한 조건 가운데 엉엉 울다가 스스로 살살 다독였고, 오랜 침묵에 잠겼다가 진솔한 문장을 짓기 시작했다. 십 년이 넘도록 못난 나를 살리고 일으키며 뿌듯한 성숙과 창조의 길로 인도했다. 그렇게 미술을 좋아해서 손으로 그리고 만들던 소년이 문학을 사랑해서 머리로 그리고 남기는 중년으로 인생의 방향을 크게 전환했다.

정상성을 향한 어리석은 집착을 내려놓고 평범함을 향한 사무치는 욕망을 버리면서, 관점과 태도 역시 주어진 상태와 허락된 환경에 알맞게 바꿨다. 억지로 무엇을 고집하지 않고,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자아의 모양을 조각하고 매력의 색채를 소묘하는 예술적인 삶에 감사한다. 지나온 갈림길을 갈망하기보단 나아갈 고유한 비전으로 나를 빚어간다. 그런 자신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그거면 충분하고 충만한 오늘이니깐 됐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는 길을 통해 말한다. 숲속 두 갈래 길에서 인적이 드문 외딴 길을 택했고, 그것이 자기 모든 걸을 바꿔 놓았다고. 내 경우에는 난치병이 약자적인 생의 길을 귀하게 열어주었고, 중증 장애가 소수자다운 삶의 길을 특별히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고독한 걸음이라 여겼던 지나온 자취와 마주한 현실, 나아갈 희망이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고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안기는 연대와 환대의 광장으로 나오게 해줬다. 이들이 조건 없이 내주는 다채로운 품과 곁에서 멋지게 쓰면서 풍요롭게 살아낸다.

[더인디고 THE INDIGO]

페이스북에 질병과 장애를 겪는 일상과 사유를 나누는 근육장애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공존의 영토를 넓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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