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선생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이에요?”
제자 녀석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나도 명확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략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관형적으로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왜 미운 사람에게 떡을 하나 더 줘야 하는지 그 효과는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옆에서 듣고 있던 누군가는 떡을 먹고 체하라고 그런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떡이나 먹고 떨어져 버리라는 뜻이 아닐까 했지만 명확하지 않았다.
AI에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답변은 예상과는 좀 달랐다. AI 답변의 요지는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더 잘해 주라는 것이었다. 사이가 나빠진 동료라 하더라도 먼저 친절로 다가가면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AI의 답변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기에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 설명이었다.
사회생활을 하고 여러 관계를 맺다 보면 새롭게 쌓여가는 관계만큼 오해와 다툼으로 틀어지는 관계도 늘어간다. 특별히 대단한 원인이 아니라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들이 발단의 대부분이지만 먼저 다가가고 사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 보면 별것 아닌 일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억울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참아내기 힘들다.
단점 없는 사람이 있을 리 없고 100% 나와 맞는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다툼의 상황에서 상대는 상종 못 할 사람으로 결론지어버린다. 말실수 한 번으로 인격 없는 사람이 되고 무리한 부탁 한 번으로 이기적인 상사로 정의 내린다.
실수이겠거니 이해하고 ‘사정이 있겠지’하고 넘어가도 크게 손해 볼 일도 아닌데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은 다툼이 되고 미움이 되곤 한다. 말 그대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못 들은 척하고 받아들여 주고 하면 될 일이 대부분이다.
AI의 설명처럼 떡 하나 더 주듯이 잘해 주는데도 나를 계속 불편하게 만드는 이는 많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만나고 부딪히고 일하는 사람 중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도 유리할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정 앞세우며 불편한 사이를 늘려가는 것보다는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불편한 감정을 내려놓는 것이 낫다.
길을 다니다 보면 종종 기분이 상하게 만드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장애를 폄하하고 혀를 차는 이들은 많이 줄었지만, 자신의 고집으로 장애인을 돕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많다.
오늘 출근길에서 만난 이는 지하철 카드를 찍으려는 내 손을 내 동의 없이 기계 쪽으로 잡아당겨서 꾹 눌렀다. 도우려는 마음이 분명했지만 갑작스럽게 손을 잡아당기거나 누르거나 하는 것이 반가울 리 없었다. 불편해진 감정 상태로 개찰구를 나오는 내게 목소리 없는 그는 추가적인 안내를 시도했지만, 그가 잡아당기는 방향은 내가 가려는 곳과 달랐다. “괜찮습니다. 혼자 가겠습니다.”라고 점잖게 말하려고 했지만 내 말투는 내가 듣기에도 매우 퉁명스러워져 있었다.
누가 들어도 “기분이 나쁘다.”를 느낄 수 있는 나의 말에 그는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추측하건대 분명 민망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난 조금 더 친절한 말투로 나의 상황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에티켓을 말해줄 수 있었다. 그의 행동이 불편하긴 했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마음이면 나의 대처는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불편한 도움을 받을 때마다 얼굴 찡그리고 화내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다.
“안녕하세요? 저를 도와주시려는 것 같은데 누구신지 목소리를 내어주시면 좋겠어요. 카드 정도는 저도 찍을 수 있고 제가 가려는 방향은 이쪽이 아니예요. 제게 한 쪽 팔을 내주신다면 훨씬 더 고마울 것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모든 상황의 정답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그날 만났던 그 사람과 내 관계에서는 얼굴 찡그리고 민망해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장애인보다 훨씬 더 많은 비장애인의 생각을 모두 원하는 모양으로 바꾼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어제도 그제도 그 전날도 오늘도 나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를 만났고 내일도 모레도 또 만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돕지 않는 것보다 불편할 때가 더 많고 때때로 밉기도 하지만 그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화를 내는 것보다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동료와의 다툼이 있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표현이다.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은 그 이후에라도 충분하다. 아무리 탄탄한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켰다 하더라도 그것은 순간 이겼다고 느꼈을 뿐 관계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상대의 마음을 사는 것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떡 하나를 더 주고 지는 것이다.
난 법정의 변호사도 전쟁터의 군인도 아니다. 상대와 싸우고 다투어서 이기는 것은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들에게 떡 하나씩을 나누어 주려고 한다.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던 이가 내게 받은 떡 하나로 다른 이에게는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떡을 나눠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사는 것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보다 떡 하나를 더 주고 지는 것이다.” 귀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