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찬의 기자노트]출퇴근길에 고개 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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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류역에서 서울로 가는 1호선은 광운대행, 구로행, 청량리행이 있다. 목적지인 영등포역까지 한번에 가기 위해서는 광운대행이나 청량리행을 타야 한다.
세류역에서 서울로 가는 1호선은 광운대행, 구로행, 청량리행이 있다. 목적지인 영등포역까지 한번에 가기 위해서는 광운대행이나 청량리행을 타야 한다. ©박관찬 기자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수원으로 이사온 지도 어느 덧 두 달이 지났다. 수원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건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좌충우돌 출퇴근길이다. 지하철을 잘못 타기도, 잘못 내리기도 하면서 어차저차 사무실이나 집까지는 가고 있다. 그래도 잘못 타거나 내일 때마다 다시 목적지로 가는 방향으로 타기 위해 애꿎은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것도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출근길에 고개 들기

수원 세류역에서 서울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은 총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광운대행, 구로행, 청량리행이다. 이중에서 광운대행과 청량리행은 사무실이 있는 영등포역까지 한번에 가기 때문에 웬만해선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타려고 한다. 구로행을 타게 되면 구로역에서 내린 뒤, 신도림 방면으로 가는 1호선 타는 곳으로 이동해서 두 정거장을 더 가면 영등포역이다.

스마트폰 지하철 앱이나 지도를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로지 저시력에 의존해서 지하철을 탄다. 그래서 세류역에 도착하면 스크린도어 중에서 위에 글자가 나오는 곳에 딱 자리잡고 서서 글자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광운대행인지, 구로행인지, 청량리행인지 글자가 나와서 확인이 될 때까지 스크린도어 위의 간판을 향해 고개를 들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하루는 가장 빨리 오는 게 구로행이라서 구로행을 탔다. 구로행은 구로역에서 사람들이 전부 다 내리기 때문에 다음 역이 무슨 역인지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전에 구로역에서 신도림 방면으로 가는 1호선 타는 위치를 확인해뒀고, 그날도 그 위치를 ‘기억’하고 신도림 방면 1호선을 타러 갔다.

구로역에서 두 정거장만 가면 영등포역이기 때문에 여유있게 두 정거장을 간 뒤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출퇴근을 하며 너무나 익숙했던 영등포역의 익숙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곳은 영등포역이 아니라 온수역이었다. 신도림행이 아닌 인천 쪽으로 가는, 완전 반대 방향을 탔던 것이다. 구로역에서 신도림 방면을 타는 곳으로 가는 길과 위치에 대한 ‘기억’에만 너무 의존한 나머지 하필이면 그날 구로역에서 내린 뒤 환승하는 곳으로 올라오는 계단이 평소 올라오던 계단과 위치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평소 기억하던 위치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서 타야 했건만 무슨 자신감으로 그랬던 걸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한다는 것을.

광운대행이나 청량리행은 영등포역까지 한번에 간다는 게 최고의 장점이지만, 영등포역에서 잘 내려야 한다. 체감으로 느끼는 방법은 영등포역 바로 직전인 신도림역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리면 신도림역이고, 다음 역이 영등포역이니까 내릴 준비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근시간대 ‘지옥철’은 신도림역에서 많이 내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 전의 역들인 구로역,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 때문에 잘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종종 활용하는 방법이 어떤 역에 도착할 때마다 나비콜 어플을 켜보는 것이다. 나비콜 어플을 켜면 GPS 기능에 따라 출발지 위치는 자동으로 입력이 된다. 보통 현재 위치로 출발지가 찍히기 때문에 현재 무슨 역인지 알 수 있다. 이때만큼은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퇴근길에 고개 들기

퇴근할 때는 영등포역에서 수원역까지 기차를 탄다. 무궁화호든 새마을호든 2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간 뒤 수원역에서 1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세류역이다. 운이 좋아서 기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갔을 때 바로 타게 되면 서울에서 30분도 걸리지 않고 집에 도착한다.

하지만 수원역에서 1호선 타는 곳으로 가서도 출근할 때처럼 고개를 들고 글자를 뚫어져라 봐야 한다. 수원역은 세류역처럼 스크린도어 위에 글자가 적혀 있지 않고 전광판을 봐야 한다. 그런데 수원역 전광판의 위치도 꽤 높거니와 글자 크기도 정말 작아서 제대로 글자를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사하고 며칠 되지 않았을 땐 항상 핸드폰으로 전광판을 사진 찍어서 무슨 글자인지 확대해서 확인하곤 했다.

수원역에서 세류역까지 단 한 정거장만 가면 되지만, ‘급행’을 타면 세류역을 무정차로 지나기 때문에 전광판의 글자를 잘 확인해야 한다. 천안행, 서동탄행, 신창행은 타면 되지만, 천안급행, 서동탄급행을 타면 세류역을 지난 뒤 다시 세류역 쪽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수원시민으로 신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계속 사진을 찍어서 전광판의 글자를 확인한 결과, 저시력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어떤 ‘규칙’을 발견했다. 천안행이나 서동탄행처럼 이른바 ‘일반’열차는 지역 이름 다음에 공백을 두고 ‘행’이라고 붙은 반면 ‘급행’열차는 공백없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천 안 행’, ‘서동탄 행’, ‘신 창 행’과 ‘천 안 급행’, ‘서동탄 급행’처럼 뒤의 ‘급행’이 붙여져 있는 걸 확인함으로써 일반인지 급행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그렇게 확인하면서 비교적 큰 어려움없이 퇴근했는데, 어느 날 그렇게 평소처럼 분명히 잘 확인하고 탔는데 내린 곳은 세류역이 아닌 병점역이었다. 수원이 아닌 화성까지 왔던 것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의 경우 일반열차와 급행열차가 일정한 순서를 지키며 운행되는데, 수원역에서 1호선을 타기 위해 전광판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분명히 다음에 올 열차는 일반열차인데, 갑자기 급행열차가 불쑥 끼어들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 부분까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급행열차를 타고 화성까지 갔던 것이다.

언제쯤이면 편안한 마음으로 출퇴근을 하게 될까.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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