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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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필담으로 의사소통하고있는 사진
시청각장애인의 손바닥에 하고 싶은 말을 한 글자씩 적는 의사소통 방법인 ‘손바닥 필담“은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방법 중 하나이다.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더인디고=박관찬 기자] 요즘 7~8세 아이들과 직접 소통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자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청각장애가 있어서 듣지 못하니까 음성인식기능 앱을 활용한다. 아이들이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말하면 앱이 그 말을 글자로 변환한다. 그러면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들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아니더라도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며 장난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핸드폰 없이 아이들과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한번씩 생기는 바람에 ‘손바닥 필담’을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기자의 손바닥에 한 글자씩 적어주면, 기자가 그 글을 읽고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하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배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한 아이가 기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자음과 모음 하나씩 적기 시작했는데, ‘ㅇ’을 쓰고 ‘ㅓ’를 차례로 적었다. 작은 손가락이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감촉과, 모음과 자음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쓰려는 아이의 진지하고 고민 역력한 표정에 절로 삼촌 미소가 지어졌다.

그 아이가 손바닥에 적으려는 글씨는 ‘오리’였지만, ‘오리’라고 기자는 단번에 읽지 못했다. 기자는 아이가 본인의 위치에서 글을 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기자가 읽을 수 있는 위치를 생각해서 글을 썼던 것이다. 기자는 아이의 쓰는 위치를 기준으로 읽어서 첫 글자가 ‘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기자의 읽는 위치를 생각하면서 썼기 때문에 ‘오’였던 것이다.

다른 아이는 기자의 손에 적는 첫 글자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ㅁ’을 먼저 적은 뒤 자음이 나오지 않고 바로 ‘ㄱ’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글자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아이가 기자의 ‘손가락’에 글자를 큼직하게 적었다.

손바닥 필담은 보통 넓은 손바닥 부분에 한 글자씩 큼직하게 적는 경우가 많다. 한 글자를 손바닥에 가득 차도록 크게 한 글자를 적고, 다음 글자를 다시 손바닥에 적는 방식이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한번에 여러 글자를 손바닥에 적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만큼 글자의 크기가 작아지므로 기자가 더 집중해야 하고 놓칠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 학생은 손바닥에 기자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한 글자를 크게 적은 뒤, 다음 글자를 기자의 검지부터 소지의 네 손가락이 붙어 있는 곳에 적었다. 손바닥 필담을 정말 오랫동안 의사소통 방법으로 사용해왔지만 ‘손바닥’이 아닌 ‘네 손가락’에 글자를 적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앞 글자를 이해하지 못한 덕분에 다음 글자를 더 집중해야 했고, 아이는 또 아이대로 더 정확하게 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특히 다음 글자를 새로 적기보다 이어서 바로 적은 연속성 덕분에 첫 글자를 구성한 ‘ㅁ’과 ‘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네 손가락에 적힌 글자가 ‘상’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묵상’이었던 것이다.

손바닥 필담은 그냥 한 글자씩 손바닥에 적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글을 쓰는 각도와 글자의 수, 크기, 쓰는 속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접근과 해석이 이루어진다. 하물며 읽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첫 글자를 잘못 적었을까봐 바로 이어서 손가락에 적는 아이들도 있는데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손바닥 필담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일까.

한편으로는 ‘청각장애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손바닥에 글로 적어주면 된다’고 말로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옮겨보게 함으로서 아이들이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사회에서 다른 청각장애인을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이 방법을 생각해내고 의사소통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고 대구대학에서 장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첼로를 연주하며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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