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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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돈보다 크다. ⓒunsplash
▲사랑이 돈보다 크다. ⓒunsplash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기숙사 생활하던 중고등학교 때 카드 게임을 배운 적이 있다. 점자를 찍어 넣기만 하면 보이지 않아도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난 꽤 흥분했던 것 같다. 카드를 섞고 나누고 주고받는 모든 과정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났다.

“카드놀이는 돈을 걸고 해야 제맛이지!”

어느 선배가 살짝 던진 제안에 우리는 몇 푼 되지 않는 용돈을 동전으로 바꾸고 가벼운 게임으로 시작했던 카드놀이를 하우스의 레이스로 바꿔갔다. 그래봤자 100원, 200원 왔다 갔다 하는 귀여운 수준의 도박이었지만 우리의 긴장도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승했다.

휴일 전날 밤엔 아예 밤을 새울 각오로 게임장이 열렸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 레이스가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00원짜리 몇 개를 주고받던 게임에서 몇천 원 정도의 큰돈을 잃은 녀석은 어떻게든 본전을 찾아야 한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그 녀석의 결과가 좋아지면 또 다른 녀석이 본전을 갈구했다.

모두가 본전 이상의 결과를 노리는 게임에서 원만한 합의를 통한 게임 종료를 선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더욱이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획득했던 녀석은 자신의 본전을 원래 가지고 있던 만큼이 아닌 스스로가 가졌던 최대 상태로 생각했다. 즐겁게 지내기 위해 시작한 게임이었지만 모두가 불편한 상태로 몸도 마음도 피곤하게 게임은 마무리되곤 했다.

애초부터 게임이라는 건 조금 더 이기는 이가 있고 반대로 손해를 보는 이가 존재한다. 원하는 좋은 결과로 끝이 난다면 더 좋겠지만 모두가 최상의 목표에 이룰 수는 없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게임을 끝낼 수 있어야 한다. 약간의 용돈은 손해 보았지만 즐겁게 시간을 보낸 지급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진 게임을 즐겁게 끝낼 수 있어야 다음번에 이긴 게임에서도 그럴 수 있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어릴 적 카드 게임을 하던 때처럼 스스로가 설정한 본전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만큼 누군가를 도왔다면 그도 최소한 그만큼은 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세 번 밥을 샀으면 세 번은 얻어먹어야 본전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카드 게임이 그랬듯 모두가 만족하는 딱 떨어지는 본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본전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상대에겐 심리적 손해일 가능성이 높다. 도움받은 횟수만큼 도움을 주었지만, 본전에 집착하는 상대라면 그가 도와준 일의 강도가 더 센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같은 횟수로 식사비를 지급했더라도 누군가는 자신이 지급한 금액이 몇천 원 더 비싸다는 것을 계산하고 있을 수 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끝없이 지속되던 기숙사의 게임처럼 관계의 악연만 반복된다. 동료를 도왔다면 도왔다는 보람으로 이미 본전 이상의 기쁨을 얻었다고 여겨야 한다. 음식을 대접하는 것도 다음번에 받아낼 목적이 아닌 진심의 나눔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세상엔 본전이라는 것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생각하는 본전의 선이라는 것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다 보면 난 다른 이들보다 좀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만큼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이들을 상대로 혹은 국가를 향해 본전 놀이를 한다면 그건 끝없는 다툼만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의 노력은 그 자체로서 이미 충분한 성취이다. 아기를 키우고 있는 아빠로서 많은 시간을 작은 녀석에게 할애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난 이미 받은 것이 많다.

게임은 게임을 즐겼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고 관계는 관계가 맺어졌다는 것으로 그 의미가 충분하다. 그 이상의 본전을 바라는 것은 그저 욕심일 뿐이다. 쓸데없는 집착으로 밤을 새웠던 어린아이들처럼 많은 순간 우리는 달성할 수 없는 본전 생각으로 마음 불편하게 살아간다.

게임을 할 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을 획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즐겁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이다. 본전이냐 손해냐에 집착할 시간에 우리의 시간이 어떤 의미로 채워가고 있는지 집중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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