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우드득!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휠체어가 왼쪽으로 힘없이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순간, 나는 잠자코 몸뚱이를 휠체어 등받이 끝까지 끌어올린 후 다시 림을 굴렸다. 여전히 휠체어는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진채였다. 경쾌하게 미끄러지듯 움직였던 휠체어가 시르죽은 듯 림을 굴려야 겨우 앞으로 나아갔다. 혹시나 싶어 천천히 휠체어를 뒤집어 살폈다. 아뿔싸, 휠체어 안쪽 X자 형태로 고정하는 접이식 금속바가 부러져 한 끝이 흔뎅거렸다.
휠체어 X바가 부러지는 통에 일상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두꺼운 금속이 부서질 만큼 거칠게 휠체어를 사용했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늘 다니는 거칠고 울퉁불퉁한 보도 표면 탓은 아닐까 싶어 괜한 거리를 노려보기도 했지만, 부질없는 원망 따위로 부러진 X바가 다시 붙을 리 만무다. 급한대로 부러진 금속바 양쪽에 금속자를 덧대 테이프로 감았다.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것이야 그럭저럭 가능했지만 버성긴 X바의 두 금속이 서로 긁는 쇳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양쪽 걸쇠에 시트가 들어맞지 않아 손가락 마디 높이의 턱을 넘어도 연신 앓는 소리를 냈다.
난감한 노릇이었다. 휠체어 제작사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방문수리를 의뢰했지만, 거절당한 처지여서 직접 찾아갈 방안을 궁리해야 했다. 게다가 일주일 내내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휠체어 제작사를 찾아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설사 서울에 사는 내가 휠체어 수리를 위해 길을 장애인콜택시로 찾아나선다고 해도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제작사에서 귀가는 ‘경기도광역이동지원센터’를 이용해야 한다. 하는 수 없다. 먼저 성남시에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성남시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 홈페이지를 방문해 ‘경기 광역 특별 교통수단 등 이용대상자 등록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했다. 개인정보부터 장애유형 및 정도, 일상생활 상태, 의사소통 가능 유무, 보조인 유무까지 무려 26개나 되는 항목을 작성해 제출하자 이튿날 접수가 되었다는 문자와 함께 장애인증명서와 복지카드 사본을 요청했다. 장애인증명서를 정부24에서 발부받아 복지카드 사본과 함께 문자로 전송하니 한 시간 남짓 후에 등록되었다는 회신이 왔다. 그리고 다시 ‘경기도교통약자광역이동지원센터’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가입을 한 후에야 성남시까지 찾아가 휠체어를 수리하고 서울로 되돌아올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오호라, 쾌재를 불렀다. 2021년 12월 27일, 경기도는 ‘경기도 교통약자 광역이동지원센터’를 개소하며 본격적인 광역 이동지원 체계를 시작했다. 이후 2023년 국토교통부는 관련 지침을 개정해 전국 광역 이동과 24시간 운영을 의무화했다. 말하자면 경기도가 광역이동지원을 가장 먼저 시작한 선구적 역할을 한 셈이니 기특하기까지 하다.
이제 성남시에서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 있는 ‘자격’이 생겼으니 제법 의기양양해져서 지난 화요일(21일) 일찌감치 서울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휠체어 제작사를 찾아나섰다. 공장지대에 위치한 휠체어 제작사는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해야 하고 장애인 화장실도 없어 뒤숭숭했지만 그럭저럭 부러진 X바는 무사히 교체했다. 휠체어 가격에 1/4에 달하는 수리비용이 부담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감당해야 할 팔자인 것을. 암튼 이제는 성남시 장애인콜택시를 호출해야 할 차례다. 혹여 접수가 안 되면 어쩌나 싶어 안달이 났다. ‘경기도교통약자광역이동지원센터’ 어플을 작동해 장애인콜택시를 신청하자 접수가 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신청접수하고 배차가 완료될 때까지 1시간 남짓, 차량이 승차지점까지 오는 데 걸린 10분을 포함해도 그럭저럭 기다릴 만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운임이었는데, 서울에서 성남까지 이용했던 장애인콜택시는 4,300원이었는데, 성남시에서 서울까지 이용했던 장애인콜택시는 2,200원에 불과해 어리둥절했다.
장애가 있는 시민의 삶에서 ‘이동’은 그야말로 ‘투쟁’이다. 그런데 시·도 경계를 넘는 광역이동은 이동권의 영역이 아니라 행정권의 장벽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해 ‘극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광역이동을 위해서는 타지역에 사전등록과 심사를 받는 과정에서 장애를 ‘증명’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누가 이동할 자격이 있는가’를 판단하려는 통제 장치일 수 있지만 거절하면 광역이동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광역이동시스템은 장애가 있는 시민을 행정 경계 속에 가두고, 서류와 등록의 미로 속에 방치하는 비가시적 배제 시스템이다. 광역이동은 더 넓게 가라는 뜻이지만 현실은 더 많이 증명하라는 요구, 더 오래 기다리라는 통보, 더 복잡하게 나누라는 강요의 연속인 셈이다. 광역이동의 수요는 해마다 늘고 있다. 고령 장애시민의 증가, 광역 병원·시설 이용 확대, 수도권 중심 인프라 집중 등으로 인해 도시 간 이동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 된다. 전국으로 시행된 지 고작 3년 남짓 이제 광역이동이 국가가 방치한 채 각 지방자치단체 간 분담·예산·책임의 불투명한 회색지대에 놓이게 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아무려나 이러쿵저러쿵 투덜대도 휠체어를 수리할 수 있어 ‘이동의 권리’를 되찾았으니 광역이동제도가 여간 고마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가만있자, 다음 달에는 일산에 다녀와야 한다. 일산은 고양시에 포함되어 있으니 ‘고양시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에 이용신청을 해야 한다. 아뿔싸, 고양시 역시 개인정보와 장애유형 및 장애정도를 세세히 캐묻는다. 황당한 것은 신청사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사유를 상세하게 기재’하란다. 장애 정보와 활동상태까지 체크했는데, 또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사유를 캐묻는다. 게다가 서울 운행지역이 마포구, 은평구, 강서구, 영등포구,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전부다. 고민이다. 용산까지 와야 하는데. 아무래도 마포구나 영등포구에 내려 장애인콜택시를 갈아타야 할 수밖에 없다. 택시를 갈아타야 하는 삶이라니, 벌써 입맛이 소태처럼 쓰다.
부서졌던 휠체어는 어찌어찌 수리를 해서 ‘이동’은 제법 자유로워졌지만 나의 광역이동은 여전히 신청과 심사에 파묻혀 있다. 가만있자, 경기도 31곳 중 성남시는 신청을 했으니 이제 30곳이 남았다. 오호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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