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최병호 집필위원] 근육병 가진 최병호와 뇌성마비 가진 엄태성은 이십 대 초반에 알게 되었다. 서울 사당동과 경북 봉화군이라는 이백 킬로 넘게 떨어진 먼 지리적 거리와 물리적 이동을 어렵게 만드는 아프고 취약한 신체 조건을 뛰어넘어, 우리는 온라인 채팅과 게임으로 소통하면서 굳건한 신뢰를 쌓고 끈끈한 우정을 나눴다.
근력이 점차 약해지는 나와 강직에 늘 시달리는 그를 이어주는 놀이는 역동적인 축구 게임이었다. 난 키보드를 몸에 바짝 놓고 팔꿈치를 책상에 딱 붙인 채 펴지지 않는 굽은 손가락들을 여러 키에 알맞게 배치한다. 미약한 힘을 최대한 아끼다가 중요한 순간에 역습을 노리는 실리적 운영이었다. 반면에 태성은 제멋대로 뻗쳐서 쥐기 어려운 게임패드를 손목에 꽁꽁 묶고서 막을 수 없는 떨림을 견디면서 조종한다. 전반적 지배로 압박을 가하는 공격적 타입이었다.
우리 둘은 팽팽한 호각세를 이루는 라이벌이었다. 나는 서정적 발라드를 치듯, 그는 경쾌한 탱고를 추듯 육체적 힘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서, 머리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온몸이 땀에 흥건해지도록 승부를 즐겁고 치열하게 겨루었다. 지금보다 건강했던 옛 시절 뜨거운 청춘으로 엎치락뒤치락 보낸 나날이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에 우렁차게 포효한다. 하하.
정신적 차원에서도 친구가 추구하는 주체적이고 예술적인 삶의 길을 따르면서, 그와 어울릴 만한 근사한 사람으로 성숙하길 열망했다. 태성은 하루 서너 권 읽을 만큼 다독으로 마음의 양식을 놀랍게 쌓고, 진지한 시를 멋들어지게 써서 보여줬다.
나도 넋 놓고 동경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내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내서 내면까지 깊이 남도록 일주일에 한 권씩 꼭꼭 씹어서 음미하듯 정독하고, 담백한 산문을 쓰게 되었다. 다독할 능력과 타고난 감각이 부족해도 진심을 담는 진정성과 담담히 풀어내는 강점을 살렸다. 절친의 매력적 삶이 나를 비추는 맑은 거울이자 딛고 도약하게 만든 유연한 구름판이었다.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를 향해 길들고 아름답게 물들었다. 마음으로 가깝게 동행하다가 우리는 병원에서 뒤늦게 만났다. 태성이 떨림을 줄이려고 뇌에 칩을 심는 위험천만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일 때, 설레는 기분과 아찔한 걱정을 안고 병문안을 다녀왔다. 오래 앉아있기 힘든 나와 말하기 벅찬 그는 충분히 얘기를 나누지 못한 채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졌다.
다시 투병과 장애에 갇힌 답답한 일상으로 복귀해 채팅으로 전하는 안부와 소통을 이어가면서 지냈다. 의도치 않게 언제나 그가 먼저 겪고서 내가 늦게 따르는 생의 궤적 가운데 우리는 쉽게 밝히기 힘든 고민을 털어놓고는 마음을 애태우고 짓누른 무거운 짐을 덜어냈다. 또한 성격과 취향을 빤히 알아서 철부지 소년이 하듯 유치찬란하게 놀리면서 무장 해제시키는 싱거운 웃음을 짓곤 했다.
병호와 태성은 단 한 번의 만남이 전부였고, 장거리를 잇는 간접적 소통이 오래였다. 하지만 점점 심각해지는 장애와 이백 킬로 넘는 거리를 가로질러서 살가운 공감과 살뜰한 돌봄으로 누구보다 가깝고 친밀하게 보냈다. 서로를 진심으로 살피고 우정으로 살려온 세월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전으로 존재에 숨겨진 그림자까지 기꺼이 내보이고, 공전으로 영혼을 이루는 눈부심을 기어코 붙잡았다. 삶을 맞잡고 우주 곳곳을 혜성처럼 누비는 무궁무진한 두 여행자다.
어느덧 사십 대가 돼버려 느슨해진 너와 나.
중력으로 사뿐히 착륙해 반갑게 마주하자!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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