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친절과 불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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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얼굴 표정 ⓒ픽사베이
▲여러 얼굴 표정 ⓒ픽사베이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눈을 뜨면 손가락 먼저 살펴본다. 언제부턴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걱정스러웠다. 그래도 아침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면 별다른 불편이 없어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손가락 마디에서 뚜둑뚜둑 소리가 나면서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아팠다.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고 매일 병원을 다니며 파라핀 치료를 받았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기가 있다는 말에 파라핀 치료기는 너무 거창할 것 같아 손모아장갑 모양의 치료기를 구입했다. 치료기가 아니라 안마기였다. 하루 두세 번 사용하며 잠깐씩의 통증을 잊었다. 퇴행성은 천천히 오는 질병이니만큼 쉽게 나아지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도 몸의 노화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상황이 계속되니 나이 먹는다는 것이 서글펐다.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안마기가 충전이 되지 않았다. 구입처에 전화했더니 바로 교환해 주겠다고 했다. “네? 그동안 잘 사용했는데 수리가 아니라 교환해 준다구요?” 나는 놀라서 물었다. 잘 포장해서 현관에 두면 수거 후 새 제품을 배송하겠다고 했다. “그럼, 제가 포장하려면 번거로우니까 먼저 받고나서 내용물만 바꿔 바로 그 상자에 넣어 보낼게요.” 그랬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직원은 상냥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새벽배송으로 새 제품이 도착했고 나는 바로 안마기만 바꿔 재포장하여 현관 앞에 내놨다. 실시간으로 새 제품 받았느냐, 사용 잘 하고 있느냐, 불편한 점 없었느냐는 문자가 연달아 왔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어 나는 노동자들의 일상이 엿보여 불편했다. 이틀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고 마지막에 제품 교환 절차에 대한 직원의 태도를 묻는 문자가 왔다. ‘과할 정도의 친절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리 평가하고 난 후, 나로서는 새 제품을 받았으니 좋았지만 생각할수록 찜찜했다. 반품 받은 제조사가 손해 볼 것 같아서였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바로 교환해 주는 게 나는 좋은데 물건 파는 쪽은 손해겠지? 나를 설득해 보고나서 수리든 교환이든 해야 할 텐데 대행 하는 쪽이라고 무조건 교환하면 어째?” 딸이 말했다. “그러니까 거기가 욕먹는 거지. 영세사업자나 배송기사들 갈아 넣고 생색내는 업체잖아.”

가끔이라기엔 자주 그 기업의 노동자들 죽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기사를 보았다. 마음 아파하면서도 급할 때 새벽배송의 매력을 떨치지 못하는 나를 되돌아본다. 노조의 하루 파업에 동참하긴 했지만 그곳은 거대 자본으로 로켓배송이 차질없이 운영되고 있는 걸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노동자의 파업 목적이 고용주의 손실로 이어져야 변화를 이끌 수 있건만 나름의 해결책이 있다면 파업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답일까? 워낙 빠른 배송의 펀리함에 젖어든 소비자는 쉽게 그것을 포기하기 힘들다. 요는 기업의 윤리의식으로 노동자의 기본권을 잘 헤아리는 것이 바람직한데 요지부동인 걸 보면 노동 시장의 국가 개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정거래법이나 담합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들이 나오긴 해도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악덕업주들을 처벌하기엔 역부족이다. 소비자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친절이라 하고 내 기분과 불편함이 해소되지 않으면 불친절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고는 그 책임을 감정노동자들에게 전가해 버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의식있는 소비자를 지향하는 나조차도 순간의 이익에 흔들리는데 국가개입이 어디 쉬운 일이랴.

손 맛사지기로 통증이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파라핀 치료기도 들였다. 나이들면 꽃병이 약병으로 바뀐다더니 집안에 이런저런 치료기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촛물에 손을 담그니 역시 맛사지 기계보다 훨씬 시원했고 뭔가 치료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사흘만에 파라핀 치료기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고열이 필요해서 그런가 싶어 다른 콘센트에 연결해도 영 반응이 없었다. 구매한 업체에 전화 했더니 지난 번 재빨랐던 응대와 달리 제조사 연락처를 알려줬다. 판매 연결만 시켰을 뿐 제품에 대한 모든 것은 제조사와 해결하라는 거였다. 과한 친절로 감동 받았던 때와 달리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나는 좀 성가셨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안내받은 제조사에 연락했다. 강원도 본사에 제품을 포장해서 보내라고 했다. 파라핀이 무거워서 제품이 손상될 수 있으니 포장을 아주 세심하게 잘 해서 보내란 말을 강조했다. 며칠간 덩그렇게 앉아있는 치료기를 바라만 보면서 이 애물단지를 반품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결국 이것은 폐품으로 넘겨질 거라 생각하니 그건 아니지 싶었다. 나흘 만에 다시 전선을 연결하니 불이 들어왔다. 하얗던 고체 파라핀이 서서히 녹는 걸 보며 뭔가 접촉 불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제 스스로 ON, OFF를 반복하는 통에 나는 기계 눈치를 보면서 하루에 한번 겨우 치료를 하고 있다. 날 잡아 강원도에 보내서 수리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같은 상황을 두 번 겪으며 나는 친절과 불친절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의 불이익을 무시하고 내게 이득이 되면 친절이고, 원칙대로 하는데도 내가 불편하면 불친절로 여기는 나의 이기심. 이거야말로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사회적 좀비라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생존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말에 공명한다.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생존에 금 가지 않도록 매사에 신경 쓰는, 의식 있는 시민으로 살아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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