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롤리타 밀레나 인터뷰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0기는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을 주제로 영국, 미국, 호주 3개국 연수를 마쳤다.
그 중 장애인 창작자들과 그 창작을 함께하고 있는 비장애인 동료들로 구성된 팀 ‘크리피(Creapy)’는 지난 8월 8일부터 16일까지 미국 LA로 연수를 다녀왔다. LA 할리우드에서 현지의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고민과 미래상을 나누고 돌아온 크리피(Creapy). 8박 10일간의 연수기를 총 7편의 글에 담았다.
[Creapy팀 통역 김지우] 9일 아침이 밝았다. 어제 막 LA에 도착한 참이었지만 바로 현장 일정이 시작되었다. 팀원들은 전날 밤 각자 방으로 흩어졌다가 당일 아침 거실에 다시 모였다. 다행히 다들 시차 적응이 크게 어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Creapy팀은 장애 크리에이터의 현재와 미래를 알기 위해 문화의 중심지인 LA에 모였다. 영화와 TV쇼, 유튜브 콘텐츠까지 정말 다양한 콘텐츠가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장애가 있는 창작자에게도 그것은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우리 팀은 이곳에서 세 명의 크리에이터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그들의 커리어와 삶, 커뮤니티에 대해 공부할 계획이었다. 첫 만남은 대형 복합 쇼핑몰 ‘더 그로브’에서 이루어졌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정말 많아 자리를 찾기 쉽지 않았으나 결국 한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번째 인터뷰이, ‘롤리타 밀레나(Lolita Milena)’를 기다렸다. 그는 배우이자 영화감독, 크리에이터, 그리고 작가와 댄서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척수장애인이다. 곧 수동 휠체어를 직접 밀며 그가 자리에 등장했다.
롤리타 밀레나가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자 첫 만남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크리에이터를 시작했는지’에 대한 답변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사실은 동생이 하라고 해서 시작했어요.” 여동생의 권유로 가볍게 올린 틱톡 영상이 유명 크리에이터의 언급으로 큰 반향을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팀의 크리에이터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큰 결심으로 무언가를 시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플랫폼마다 전략을 다르게 세워야 한다고 했다. 틱톡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게 되는 입구 같은 공간이라면, 유튜브·패트리온·인스타그램은 꾸준히 찾아오는 관객들과 깊게 연결되는 공간이다. 그는 커리어와 장애 이야기를 동시에 담지만, 어느 쪽이 더 유입을 일으키느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이 결국은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보려고 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은 단순히 장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존중이 있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좋아하는 것을 기록할 수 있다는 기쁨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콘텐츠는 여행 영상이다. 같은 나라를 여러 번 방문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기록해두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또 춤은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5살 때부터 춤을 배웠고, 지금도 모던 댄스와 파트너 댄스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LA로 이주했는데, 춤과 연기의 기회가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 유저든 아니든 상관없이 댄서가 될 수도, 안무가가 될 수도 있다.” 그의 말에는 춤이 단순한 예술을 넘어 몸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호러 장르에 대한 애착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호러 영화를 좋아했고, 아버지가 스티븐 킹 소설을 즐겨 읽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호러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르에서조차 장애인 배우의 존재는 극히 드물다. 그래서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서 더 많은 장애 표현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직접 영화를 만든다고 말했다. 동시에 로맨스와 드라마를 쓰는 것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다만 장애를 단순히 고통으로 그리는 기존 작품들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삶 속의 섬세한 슬픔과 기쁨을 제대로 담아내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대화는 자연스럽게 장애인의 창작 환경으로 이어졌다. 그는 ADA(장애인법) 같은 제도가 있어도 실제 고용 기회는 많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 ADA와 공공보험 제도가 위협받았던 상황도 언급했다. “장애인 크리에이터로서 사기업에서 초청받는 기회가 많았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그런 기회가 줄어들었어요.” 이 말은 한국의 경험과도 겹쳤다. 나 역시 정권 변화로 초대가 취소된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래도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웃으며 “나는 바쁜 게 좋아요.”라고 답했다. 밤 늦게까지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삶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여행, 교육, 연기, 춤,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활동까지. 롤리타 밀레나의 말 속에서, 그는 단순히 한 명의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계를 넓혀가는 한 명의 예술가이자 활동가라는 사실이 선명히 드러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더 그로브를 함께 구경하고 옆 파머스 마켓에서 미국식 고기 꼬치 식사를 했다. 긴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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