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py] ⑤ 제자리걸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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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py팀과 크리스티나 킴 교수(정중앙)의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Creapy팀과 크리스티나 킴 교수(정중앙)의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 크리스티나 킴 교수 인터뷰와 안내견 거부 사건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0기는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을 주제로 영국, 미국, 호주 3개국 연수를 마쳤다.
그 중 장애인 창작자들과 그 창작을 함께하고 있는 비장애인 동료들로 구성된 팀 ‘크리피(Creapy)’는 지난 8월 8일부터 16일까지 미국 LA로 연수를 다녀왔다. LA 할리우드에서 현지의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고민과 미래상을 나누고 돌아온 크리피(Creapy). 8박 10일간의 연수기를 총 7편의 글에 담았다.

[Creapy팀 홍보 이주은] 해가 지기 시작한 월요일 저녁,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주택가를 거닐며 하루가 지날수록 치안이 좋지 않다고 악명높은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에서도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고 팀원 우령과 이야기 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으로의 귀국을 고작 이틀 남긴 목요일 아침, 나는 그 어떤 날보다 긴장된 마음으로 우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이유는 바로 전날 미국에서 처음으로 안내견으로 인한 택시 승차 거부를 당한 경험에 있다. 그 마음이 기우였다는 듯, 이전과 다름없이 안내견 주미는 부드럽게 택시 위로 올라탔고, 우버 기사는 주저 없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글렌데일로 이동하여 우리가 만난 사람은 크리스티나 킴(Christina Kimm) 교수다. 킴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California State University, CSU) 로스앤젤레스 캠퍼스 명예교수이며, 발달 장애 청소년들이 순조롭게 성인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및 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연구 목표를 두고 있다. 현재에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전환교육이 주 전공인 분이었다. 그리고 브런치에서 ‘교주’라는 닉네임으로 열정적으로 에세이를 써 내려가는 작가. 그를 친근하게 교주라고 부르는 지우 팀원을 따라 이하 그를 교주로 지칭하겠다.

장애인 크리에이터로서 우리는 언제까지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연수를 시작한 만큼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기회라 생각하여 인터뷰를 요청했다. 교주의 말 또한 우리가 이전에 만난 두 크리에이터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터뷰 내용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너희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

교주는 단순히 장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의 콘텐츠는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려우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제로 잡고 그 과정에서 장애를 드러내는 방식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접근성 문제나 차별 문제를 꼬집는 내용은 오히려 장애인의 삶의 단편적인 측면을 부각하기에, 흥미 본위의 콘텐츠에 장애를 섞어야 대중성과 정체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의 기호를 지나치게 좇으면 금세 지치기 마련. 그러기에 ‘나’의 기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죽을 때까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직도 많이 남았다던 우리 팀의 장애인 크리에이터들에게 콘텐츠는 곧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며, 그 인생의 창작자이자 주인공은 바로 ‘나’니까.

교주가 몸담은 특수교육 교육자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콘텐츠 또한 단순히 생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식을 개선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만 수익 그래프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직업으로서의 현실이다. 다른 직업을 병행하거나 영역을 확장하는 것도 안정적인 미래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우리가 인터뷰 했던 두 미국인 크리에이터 인터뷰이 또한 배우나 댄서, 작가 등 다양한 분야로 자신의 범위를 넓히면서 입체적인 자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었다.

중층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아마도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에는 모두가 큰 이견이 없었다. 한국에는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국 사회는 꾸준함과 일관성을 중요시한다. 두 가지 직업을 동시에 영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또한 장애인의 사회적 고용 기회가 제한된다는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미국에서는 장애를 한국보다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장애인을 좀 더 normality에 편입된 존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있어서 장애 인권 중심의 콘텐츠를 오히려 별로 궁금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넓은 영역으로 자신을 확장하는 일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단순히 장애인으로서의 나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방면으로 표현해야 한다.

교주와 함께 글렌데일의 유명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마친 후, 영상 촬영을 위해 멜로우 거리로 이동하려고 우버 택시를 불렀다. 그러나 우리는 글렌데일 길거리에서 다시 안내견 거부를 겪어야만 했다. 차에 타자마자 개는 태울 수 없다며 내리라는 기사. 알레르기가 있냐, 혹은 개에게 공포를 느끼냐고 물어보았으나(우버 규정으로는 알레르기나 일반적인 공포심으로 인한 service dog(보조견, 안내견) 거부 또한 금지되지만, 혹시나 정도가 심할까 싶어서 배려 차원에서 물어보았다.) 그런 질문에는 일절 답을 하지 않고 자신은 펫 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았으니, 개를 태울 수 없다는 말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우버 택시에 펫 옵션이 있는 것을 우리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그 옵션은 더 많은 이동 비용과 더 긴 대기 시간을 요구하는 것 또한 우리는 너무 잘 안다. service dog는 펫 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일반 옵션으로도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라 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영문으로 작성된 안내견 증명서까지 준비해서 들고 다닌 우리는 우버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가 비장애인이 지급하는 시간과 돈에 추가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차별을 겪어야 할 이유 또한 없다. 첫 차를 떠나보낸 우리는 다음 택시를 불렀고, 우리는 그 글렌데일 길바닥에서 연속 다섯 번의 안내견 거부를 당했다.

기사에게 아무리 규정을 설명하고 홈페이지까지 찾아서 보여줘도 전부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옹고집뿐이었다. 이동권을 침해당한 우리의 분노는 언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서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고, 퉁겨져서 우리에게 돌아온 부아는 조금씩 내부에 고이고 있었다. 모두가 침착을 잃고 이리저리 갈린 칼날 같은 자세를 취하며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그 샌드위치 집의 손님들 시선이 우리가 기사에게 항의하며 세운 목의 핏대에 가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대본이 없는 연극 무대에 떠밀려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관중은 허둥대는 배우들을 도와줄 이유가 없으니 그저 지켜만 보고, 정해진 대본을 모르니 다음 택시는 우리를 받아줄까 하는 어쭙잖은 희망을 품으며 이 방황을 어떻게든 끝내야만 했다. 그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모욕감과 수치가 아닐 리가 없다. 하지만 가장 수치스러운 건 여기서 포기하고 펫 옵션을 부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의 합리화이기도 했다.

다행히 여섯 번째 잡힌 우버에 무사히 탑승해서 펫 옵션을 선택할 일은 없었다. 이 문장에 ‘다행히’와 ‘무사히’를 넣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느끼자마자 모욕과 수치가 있던 자리에 슬픔이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그러나 연수의 끝이 다가오고 슬퍼하고만 있을 겨를은 없다. 이 타지에서 우리의 발자취를 남기는 우리만의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장애인 크리에이터의 역할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번 연수의 궁극적인 목표다.

투쟁은 끝이 없고, 현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천상 낙원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던 교주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 미국 또한 완벽한 낙원은 아니었다는 점을 인식했으니,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카메라에 기록된 당시 상황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일이 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는 80대 20이 서로 포용하며 보듬어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인터넷 저널입니다. 20%의 사회적 소수자의 삶을 쪽빛 바닷속 살피듯 들여다보며 80%의 다수가 편견과 차별 없이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편견의 잣대를 줄여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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