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apy] ⑦ 시각장애인의 시선으로 하는 게임과 콘텐츠 창작: 로스 마이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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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py팀과 로스마이너(정중앙)의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Creapy팀과 로스마이너(정중앙)의 단체사진 ⓒ한국장애인재활협회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최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이하 드림팀)’ 20기는 행동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을 주제로 영국, 미국, 호주 3개국 연수를 마쳤다.
그 중 장애인 창작자들과 그 창작을 함께하고 있는 비장애인 동료들로 구성된 팀 ‘크리피(Creapy)’는 지난 8월 8일부터 16일까지 미국 LA로 연수를 다녀왔다. LA 할리우드에서 현지의 창작자들과 교류하며 서로의 고민과 미래상을 나누고 돌아온 크리피(Creapy). 8박 10일간의 연수기를 총 7편의 글에 담았다.

[Creapy팀 리더 허우령] 우리의 마지막 인터뷰이는 로스 마이너(Ross Minor)였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에 큰 호기심이 일었다. 게임을 사랑하고, 그 열정으로 게임 접근성을 연구하며, 나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 화면해설에 참여하는 시각장애인 크리에이터. 미국에서 활동하는 그는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갖고 있을까. 그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경쾌하게 흰 지팡이를 움직이며 다가와 굵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순간이 내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자기소개가 시작되자 더 놀라운 사실들이 이어졌다. 그는 패럴림픽에 수영 선수로 출전한 경험이 있었고, 게임과 포켓몬을 사랑해 갸라도스 타투를, 손목에는 ‘고통은 창작의 영감이 된다’라는 점자 타투를 새겼다. 그에게는 삶과 창작이 분리되지 않는 듯한 결연한 기운이 있었다. 로스 마이너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트위치에서 활동하는 접근성 전문가예요. 주로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지를 다루고, 때로는 아앙의 전설 같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의 Audio Description 작업에도 참여합니다.”

한국에서 ‘접근성’이라는 단어는 주로 교육, 시설, 혹은 웹 접근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로스 마이너에게서 들은 ‘게임 접근성’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각장애인 유저가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에 도전하며 개선점을 제안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트위치 스트리밍이나 댓글 읽기처럼 시각 정보가 중심인 활동을 자신만의 노하우로 풀어내고 있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이번 프로젝트 동안 우리가 만난 크리에이터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치는 것”. 크리에이터로 살아가는 데 있어 이 태도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은 늘 순탄하지 않다. 대중이 무관심할 때, 성과가 수치로만 평가될 때,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러웠다. 그 공허함 속에서 드림팀 프로젝트에 지원했고, 미국의 크리에이터들을 만나며 그들의 뚜렷한 정체성이 나에게도 새로운 색을 입혀주었다. 특히 로스 마이너와의 인터뷰는 단순히 놀라움에 그치지 않고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는 수익성, 지속 가능성, 플랫폼 전략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브랜드 콘텐츠와 스폰서십을 병행하다 보면 풀타임 직업처럼 돼요. 그러면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과 충돌할 때가 있죠. 또 시각장애인 크리에이터라는 이유로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받지만, 그 기대를 늘 충족시키는 건 어렵습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고, 여전히 기회를 찾고 있어요. 중요한 건 어디에 집중할지, 그리고 어떤 플랫폼에 투자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죠.” 그의 고백은 나 또한 겪어온 고민이었다. 퀄리티와 조회수, 열정과 수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 크리에이터로 살아간다는 건 결국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로스 마이너와의 만남은 단순히 한 시각장애인 크리에이터의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접근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크리에이터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였다. 그는 장애를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몰입했고, 그 열정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경계는 때때로 너무도 단순하게 설정된다. 그러나 로스의 삶이 보여주듯,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능성을 넓히느냐”일 것이다. 나 역시 크리에이터로서, 그리고 한 명의 시각장애인으로서 그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창작의 언어와 방법을 확장시키는 원천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우리의 인터뷰와 10일간의 연수는 서서히 끝을 향해 갔다. 로스와의 만남을 마무리한 뒤, Creapy 팀원들은 마지막 LA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멜로즈 거리의 화려한 간판, 마음에 쏙 드는 빈티지 숍, 두 손 가득 담은 선물들까지—각자만의 방식으로 이 시간을 기억에 새겼다.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이도 있었고, 밀린 영상과 사진을 정리하는 이, 마지막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이도 있었다.

긴 테이블에 아홉 명의 팀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스테이크와 채소를 구워 서로의 접시에 덜어주며 함께한 이 시간은 호텔 만찬보다 따뜻하고 편안했다. 사실 인터뷰와 기관 방문만큼이나 소중했던 건 바로 이런 순간들이었다. 시각장애인, 지체장애인, 안내견과의 생활, 그리고 비장애인과의 생활이 한데 어우러지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다름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세심하게 서로를 돌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작은 게임을 시작했다. 바로 ‘마니또’.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각자의 파트너를 유심히 살피고 곁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장치였다. 누군가 무심코 흘린 불편함을 대신 챙겨주고,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곁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마니또가 가진 의미였다. 그리고 마지막 저녁, 그 정체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놀라움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였어? 왠지! 고마워!”라는 말이 이어지고, 서로를 향한 감사와 장난 섞인 농담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팀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를 기억해 줄 동료가 되어 있었다.

Creapy. 언뜻 낯설게 들릴 수 있는 이름이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각자의 색깔과 정체성을 가진 창작자들이 만나 서로의 가능성을 비춰준 이름이기도 했다. 우리는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지뿐 아니라,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갈지를 깊이 고민했다. “일상이 곧 콘텐츠다.” 이 말처럼, 연수 기간의 모든 만남과 순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영감이 되었다. 열흘간의 시간은 끝났지만, 그 안에서 맺어진 관계와 마음은 앞으로도 우리의 새로운 길을 넓혀줄 것이라 믿는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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