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맞춤형 지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여우가 두루미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을 때, 여우 자신이 먹기 편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두루미에게 대접한다. 여우와 달리 입이 긴 두루미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초대받았음에도 아쉬움만 삼키게 된다.
이후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하는데, 두루미는 여우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긴 입을 넣어서 편하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긴 병에 음식을 담아 여우의 앞에 내놓는다. 입이 길지 않아 긴 병 안으로 입을 넣을 수가 없는 여우는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 채 앞서 자신이 초대했을 때의 두루미처럼 아쉬움만 삼키게 된다.
장애인은 우리 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이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아쉬움이 남는다. 장애와 관련된 복지나 정책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지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여전히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할 때처럼 혹은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할 때처럼 상대방(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강산이 두 번, 세 번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콜택시나 저상버스, 지하철 등 여러 교통수단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지만, 정작 장애인이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거나 아예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지하철을 탈 때 ‘목숨 걸고’ 탄다는 말까지 있다. 그만큼 부실하게 해놨다가 장애인이 추락사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습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무장애 관광지’, ‘열린 관광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관광지에는 장애인의 접근이 미흡한 곳도 존재한다. 휠체어가 접근 가능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지원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 또는 수어통역지원, 그리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정보제공까지 여러 장애유형을 포괄하여 진정한 ‘무장애’나 ‘열린’ 관광지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지원사, 장애인 근로자의 원활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한 근로지원인과 같은 지원인력제도가 존재해도 역시 꾸준히 아쉬움의 목소리가 들린다. 활동지원사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장애인 이용자가 원하는 유형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찾기는 어렵고, 취업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근로지원인 예산이 다 소진되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연락을 받고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지는 장애인 근로자들도 적지 않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했을 때, 자신이 먹을 음식은 접시에 담고 두루미가 먹을 음식은 두루미가 먹기 편하도록 긴 병에 담아서 대접했다면 어땠을까? 두루미도 여우를 초대했을 때 자신이 먹을 음식은 긴 병에 담고, 여우가 먹을 음식은 접시에 담아서 대접했다면 어땠을까?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맞춤형 지원’이라는 걸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복지서비스나 제도를 만들고 설계할 때, 해당 복지서비스와 제도의 수혜 대상이 되는 장애인에게 어떤 형식으로 적용이 되는지를 꼭 파악해야 할 것이다. 어떤 복지서비스나 제도에 대해 시행하기 전에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을 통해 자문을 하고 의견을 수립하는 과정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부터 아니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여러 유형의 장애당사자들을 참여시킴으로서 복지서비스와 제도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제는 장애인의 이동권, 근로의 권리, 정보접근권과 문화생활향유권과 같은 누구나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기본권이 ‘잘 보장되는’ 대한민국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야 한다. 경제대국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다면 사회의 구성원을 온전히 포용하고 있지 못한 것인 만큼 장애 관련 복지서비스와 정책과 제도의 나아갈 길과 방향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고민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