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로봇청소기가 잘 지나가도록 집 안을 정리하고 소파에 앉았다. 영화를 보는데 징징대는 청소기 소음이 점점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내 발 옆에 멈춰서 ‘장애물을 비켜 갑니다’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어머, 미안!”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다. 나이 먹어 가면서 혼잣말이 점점 늘었는데 기계음에 즉각 반응할 때는 헛웃음이 나온다. 운전할 때도 내비가 알려주는 곳보다 내가 아는 길로 접어들며 자주 하는 말이 “미안해, 이 길이 더 빠르거든.”, “미안, 이쪽 경치가 더 이뻐서 난 이리로 갈래.” 너무도 다정하게 대꾸하는 나를 내가 못 느낄 때도 있으니 이러다 사람보다 기계와 더 정분날 것 같다. 사실 이런 습관성 미안하단 말은 진심이라기보다 별 뜻 없이 가볍게 내뱉는 독백이다.
자폐성장애인 아들과 살면서 내 입에 밴 말이 있다. 미안하다와 죄송하다는 말. 건성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에 하는 말이다. 그 말을 하면 듣는 이보다 내가 더 마음이 편한데 이것도 일종의 이기적인 행동이지 싶다. 내 마음이 이렇기에 타인들이 하는 미안하다는 말에 나는 기분이 풀리는 편인 걸 보면 너무 단순해서 그런 것도 같다.
아들 어렸을 때, 어떤 경험이든 많이 해줘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말에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민폐’를 일삼았다. 조용한 식당에서 울음보 터진 아들이 바닥에 뒹굴면 얼른 안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과의 외출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나는 뻔뻔한 엄마가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주위의 시선이 내 몸을 뚫고 들어와도 내색하지 않고 남들의 이해를 바랐다.
‘저는요, 매일 이 전쟁을 하고 살아요. 잠시만 보게 되는 여러분이 이해 좀 해 주세요.’라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우호적이었다. 물론 동정 어린 시선으로 혀를 차는 어른들과 인상을 쓰며 불쾌한 표정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도 자꾸 겪다 보니 만성이 되었다. 똑같은 상황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아들도 점점 적응하는 게 보였다. 음식 기다릴 줄 모르는 아들이 주방 쪽을 힐끗거리며 기다릴 때는 미어캣 같아서 우리 가족이 웃을 때는 아들도 따라 웃었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들을 내가 집에서 무슨 수로 사회성을 가르치겠나.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배울 수 있는 것이라 사람들의 눈총을 다 받아내야만 가능한 것들,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소심했던 나의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나 싶다.
아들의 활동지원사는 이동보조와, 주간활동이 끝난 아들의 오후 남는 시간에 함께 운동과 산책을 하는 분이다. 70대 여성이 20대 아들을 지원한다면 다들 놀란다. 지인들은 직진 본능이 강한 아들임을 잘 알기에 혹시 따라잡지 못하면 어쩌냐는 걱정을 했다.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의 그분은 아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을 것 같아 좋아 보였다. 아들은 잔소리에 민감해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 소릴 하면, 본인이 그리 생긴 걸 왜 자꾸 바꾸려 하냐고 항의하듯 난폭해지는 성향이라 잘 맞을 것 같았다. 반사회적인 행동이나 자해와 타해 외의 행동은 관찰만 해 달라는 나의 조언을 그분은 잘 따라주었다. 3년째 함께 하면서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분이 늘 감사하다. 두어 번 아들 잃어버렸다는 연락을 받고도 내가 나서기 전에 바로 찾았으니 그동안 큰일은 없었다.
그분이 엄마인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들의 행동에 대해 내게는 아직도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그분은 ‘뭐 어때?’하는 모습이 있어 보인다. 미용실 예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가 이발하고 올 때는 미용실 원장에게 미안해서 내가 깜짝 놀랐다. 죄송하다고 문자를 보내니 다행히 원장은 비는 시간에 잘 맞춰 와서 괜찮았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다행이란 말과 함께 감사하다는 문자로 마무리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들을 떠나 좀 더 넓게 톺아보니 사회 변화를 위해 아무 대가 없이 활동하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밀려왔다. 입으로만 사회 부조리에 비분강개하며 스스로의 만족에 빠졌던 오만한 내가 보였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살아보니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슬그머니 뒤로 빠져서 외면하는 일이 잦았다. 미안한 마음이 켜켜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그 마음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일 뿐이라던 홍세화 작가의 말을 상기한다. 머릿속 미안함 열 번보다 한 번의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 믿는다.
[더인디고 THE INDIGO]


![[조미영의 오늘] 친절과 불친절 ▲여러 얼굴 표정 ⓒ픽사베이](https://theindigo.co.kr/wp-content/uploads/2025/08/smiley-2979107_1280-218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