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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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의 얼굴을 두 가지 상반된 감정으로 동시에 표현한 초상화로, 왼쪽 얼굴은 깊은 슬픔을 보여준다. 입이 아래로 처지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고, 미간은 찡그려져 있다. 반면 오른쪽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입꼬리가 크게 올라가 있고, 눈에도 기쁨과 여유가 담겨 있다./이미지=ChatGPT 활용 제작
▲한 남성의 얼굴을 두 가지 상반된 감정으로 동시에 표현한 초상화로, 왼쪽 얼굴은 깊은 슬픔을 보여준다. 입이 아래로 처지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고, 미간은 찡그려져 있다. 반면 오른쪽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입꼬리가 크게 올라가 있고, 눈에도 기쁨과 여유가 담겨 있다./이미지=ChatGPT 활용 제작
  •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오마주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저녁 모임이 있어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이게 웬 떡인가?’ 평소 1시간~2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오늘따라 부르자마자 배차가 되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바로 잡힌다.”라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자조적 농담이 있다. 그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른 배차였다. 불금의 시작을 기분 좋게 열 수 있었다.

30분 정도 달려 식당에 들어서자 따뜻한 온기와 조명, 즐거운 목소리들이 나를 반겼다. 음식과 이야기, 웃음과 농담이 이어지며 잠시나마 일상의 무게를 잊었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갑자기 아래로부터 불청객이 찾아왔다. 바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신호였다.

계산대로 가서 직원에게 화장실 위치를 물어보니 식당 뒤편에 있다고 했다. 통로를 지나 화장실에 다다랐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높은 턱이 휠체어 앞을 가로막았다. 절대 들어갈 수 없었다.

나를 보고도 이런 곳을 안내해 준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방광이 나를 재촉했기에 다른 화장실을 알려달라고 했다. 사실 방광이 말을 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직원은 바로 옆 건물 화장실을 안내해 주었다. 재빨리 그쪽으로 향했다. 물리적 거리는 짧았지만, 초조한 마음에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건물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자 1층에 화장실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장애인 화장실이었다. 안도의 숨을 쉬며 곧장 그쪽으로 달려가 문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버튼을 잘못 눌러 열리지 않았나 싶어 한 번 더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와 두 번, 세 번 연속으로 버튼을 눌러버렸다. 마찬가지였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한 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터지기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아무 건물에 들어갔다. 젠장, 이번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2층에 있었다. 1분 1초가 급한데,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했다.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 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립니다.”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렐루야” 마치 천상의 목소리 같았다.

화장실 불을 켰지만, 그곳에는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이미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갈 공간은 없었다. 방광은 사회적 위신과 체면을 따질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윽고 내 몸의 액체가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다리가 따뜻해져 왔다. 그리고 복도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괴감이 들어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바로 돌아가면 들통이 날 것 같아서 차가운 복도에서 한참을 말렸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다시 일행이 있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일행들은 왜 이렇게 늦었는지 물어보았지만, 전화가 길어졌다며 둘러댔다.

점퍼를 내려 축축하게 젖은 바지를 가렸다.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지며 모두 활짝 웃었다. 나는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는 웃었다. 일행의 분위기에서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젖은 바지야 가릴 수 있지만, 냄새는 절대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나고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장애인 콜택시를 불렀다. 얼마 뒤 문자가 왔다. 기쁜 마음으로 확인하였지만 ‘접수량이 많아 배차가 늦어지고 있사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차가운 문자가 와 있었다.

멀리서 눈치를 던지던 직원이 다가와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고 말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과 저상버스를 선택할 수 없는 곳이었기에 택시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배차가 지연된다는 문자가 왔다.

아까 젖었던 바지가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잠바 옷깃을 여미었지만, 차가운 냉기는 막을 수 없었다. 시커먼 주차장에 혼자 쓸쓸히 서 있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자동차 한 대가 요란하게 기침하며 빨간 눈을 떴다. 그리고 뭐가 그리 급한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쌩하니 사라졌다.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또다시 문자가 왔다. 타짜가 소중한 패를 비밀스럽게 열어보듯 핸드폰을 확인했다. 배차 지연 안내 문자였다. 한기가 밀려와 주변에 들어갈 만한 편의점이나 카페를 찾아보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한 개도 없었다. 막막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오늘은 분명 ‘운수 좋은 날’이었다. 장애인 콜택시는 빠르게 잡혔고 약속에 늦지도 않았다. 쾌조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 운을 한 번에 모두 당겨 써버린 걸까. 이후 만난 화장실들은 모두 나를 받아주지 않았고, 이 추위에 젖은 바지를 붙잡고 떨어야 하는 ‘더럽게 운수 좋은 날’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큰 게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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