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년 만에 사라지는 ‘간주 부양비’—가짜 소득이 만든 사각지대 해소
- 장애인·저소득층 의료접근권 확대… 상담·정신건강·간병 지원 강화
- 과다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 도입… 중증장애인은 기존 부담 유지
- 예산 13% 이상 확대… ‘가족책임에서 국가책임으로’ 전환의 신호
[더인디고] 2026년 1월, 의료급여 제도에서 ‘부양비’가 26년 만에 완전히 폐지된다. 소득이 낮아도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급여 수급 대상에서 배제되는 모순적 구조가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가족과 떨어져 사는 중증장애인,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에서 최소한의 소득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장애시민에게는 오랜 시간 요구해 온 변화가 드디어 현실이 된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9일 오후 열린 ‘제3차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에서 내년도 의료급여 제도개선 사항과 예산안을 공개하며 부양비 제도의 폐지를 공식화했다. 의료급여는 중위소득 40% 이하 저소득층에게 의료비를 거의 전액 지원하는 대표적 공공 의료보장제도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급요건 심사 단계에서 가족의 ‘간주 부양 능력’이 반영되며 수많은 취약계층이 사각지대에 내몰려 왔다.
의료급여 부양비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개념으로,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생활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지원할 수 있다’고 간주하여 수급자의 소득으로 계산해 버리는 방식이다. 장애계는 이를 ‘간주 부양비’라 부르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요구해 왔다. 가족관계가 단절됐거나 갈등으로 독립해 사는 장애인, 탈시설 이후 최소 소득만으로 재기를 준비하는 이들 모두에게 이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 가족 소득’ 때문에 의료보장을 박탈하는 역설로 작용해 왔다.
복지부는 이번 폐지로 인해 의료급여 수급자가 확대되고, 가족 관계와 무관하게 실제 소득을 기준으로 한 지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시에 부양의무자 기준도 단계적으로 간소화해 고소득·고재산 보유자 등 극히 일부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완화할 계획을 밝혔다. 장애계가 오랫동안 주장해 온 ‘가족책임에서 국가책임으로의 전환’이 부분적으로 현실화되는 것이다.
한편 ‘과다 외래진료 본인부담 차등제’도 새롭게 시행된다. 내년부터 의료급여 수급자가 연간 외래진료 365회를 초과할 경우 초과분에 대해 본인부담률 30%를 적용한다. 다만 산정특례 대상자, 중증장애인, 아동, 임산부 등 건강 취약계층은 현행 부담금(1천~2천원)을 그대로 유지한다. 적용 예상 인원은 전체 의료급여 수급자 156만 명 중 약 550명으로 0.03% 수준에 불과하다.
장애계에서 특히 주목하는 변화는 정신건강 영역이다. 의료급여 수급자의 정신과 외래 상담료 지원 횟수가 대폭 확대된다. 개인 상담은 주 2회에서 7회로, 가족 상담은 주 1회에서 3회로 증가한다. 이는 만성적 스트레스, 장기 빈곤, 고립 등 복합적 요인으로 정신건강 위기에 놓이기 쉬운 장애인·저소득층에 중요한 변화다. 또한 급성기 정신질환자 치료체계 강화를 위해 ‘급성기 집중치료 병원’ 수가가 신설되고, 폐쇄병동 입원료도 5.7% 인상된다.
내년 하반기에는 요양병원 중증 입원환자에 대한 간병비 지원도 추진된다. 많은 장애·고령 의료급여 수급자에게 간병비는 가장 큰 경제적 부담이지만 그동안 실질적 지원은 미비했다. 건강보험의 간병 급여화 논의와 맞물려 의료급여체계에서의 보장성 강화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내년도 의료급여 예산은 9조 8천400억원으로 올해 대비 13.3% 증가했다. 1조 1천억 원이 넘는 예산 확대는 의료급여 사각지대 해소와 장애·저소득층 의료권 보호가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은 “부양비 폐지와 예산 확대는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계는 이번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이 의료기관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구조, 재난·응급의료체계의 취약성, 의료급여 행정 절차의 복잡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부양비 폐지는 분명 장애시민에게 구조적 변화의 시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인디고 THE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