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앨리스 웡의 죽음, 그리고 ‘급진적 존재’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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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웡(Alice Wong)은 미국의 장애인권 운동가이자 작가로, 장애시민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확산하기 위해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Disability Visibility Project)’를 설립했다. 근위축성 척수근육병을 가진 당사자로서 장애를 정치적 정체성으로 재구성하는 데 앞장섰고,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를 편집해 현대 장애 서사의 지평을 넓혔다. 미디어·정책·문화 전반에서 장애인의 자기표현과 서사권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앨리스 웡(Alice Wong)은 미국의 장애인권 운동가이자 작가로, 장애시민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확산하기 위해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Disability Visibility Project)’를 설립했다. 근위축성 척수근육병을 가진 당사자로서 장애를 정치적 정체성으로 재구성하는 데 앞장섰고,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를 편집해 현대 장애 서사의 지평을 넓혔다. 미디어·정책·문화 전반에서 장애인의 자기표현과 서사권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 nursing.ucsf.edu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미국 장애인법(ADA) 제정 30주년을 맞아 37명의 장애가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묶은 논픽션 『급진적으로 존재하기(Radical Visibility)』를 세상에 내놓았던 앨리스 웡(Alice Wong)이 지난 11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한겨레신문을 통해 알려진 그의 사망 소식은 비장애중심 사회의 거대한 서사들 사이에서 침묵을 깨고 자기 목소리를 전하려 했던 한 활동가의 삶이 막을 내렸음을 뜻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장애운동을 다시 묻고 새롭게 답을 찾으라는 질문은 아닐까 싶다.

“장애인의 존재는 언제나 정치적이다(Our existence is political).”

앨리스 웡이 남긴 이 문장은 그의 투쟁의 핵심이자, 한국의 장애운동이 지금 이 시점에서 더 깊이 웅숭깊게 되새겨야 할 윤리적 출발점이다. 이 문장은 앨리스 웡이 평생 강조해온 핵심 신념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장애를 단순한 개인적 상태가 아니라 사회 구조·권력 관계·문화적 서사와 맞닿아 있는 정치적 정체성으로 바라보게 만들며, 장애당사자의 경험을 중심에 둔 ‘급진적 존재(Radical Visibility )’의 윤리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앨리스 웡이의 삶은 단순한 ‘장애시민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 내 장애 운동이 제도적 권리 쟁취 — 특히 ADA 이후의 정책 개선 — 에 머무르지 않고, 장애의 문화적 의미, 장애당사자의 언어, 혐오와 의료적 서사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장 전면에서 던져온 인물이었다. 그는 장애를 결핍이 아닌 정치적 정체성으로,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 생산자로 재배치했다. 『급진적으로 존재하기』는 그 선언의 집약체였다. 37명의 이야기는 제도나 정치적 수사가 아닌 인간의 경험 자체가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힘임을 새롭게 증명했다. 또한 그가 평생 주창해 왔던 ‘장애 가시화 운동(Disability Visibility Movement)’은 장애시민을 사회의 주변부로 밀어내는 구조적 비가시화를 깨뜨리고, 장애시민의 존재·경험·언어를 공적 영역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정치적·문화적인 실천 행위였다.

그는 단순히 장애를 개인의 결핍이나 의료적 문제로 규정하는 기존 서사를 거부하고, 장애시민의 삶을 지식·정치·문화의 생산 주체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장애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기록하는 ‘Disability Visibility Project’를 운영하며, 장애시민의 경험 그 자체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세웠다. 그래서 ‘가시화’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누가 말할 권력을 갖는가를 재구성하는 행위이며, 존재 자체가 정치임을 드러내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장애시민의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차별 구조를 문제화하고, 정책·문화·여론의 변화를 촉발하는 전략적 저항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한국 사회에 돌려보자. 우리의 장애운동은 지금 어떤 서사를 중심에 두고 있는가? 한국의 장애정책은 지난 20년간 법률·제도·예산·국가계획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탈시설, 이동권, 돌봄, 지역사회 자립, 보조기기, 교육권 등 의제들은 점점 구체화되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제도 설계가 확장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장애시민의 삶을 설명하는 서사(narrative)는 여전히 국가 중심적, 제도 중심적, ‘보호’ 중심적 언어에 갇혀 있다. 여전히 장애시민은 통계의 대상이거나 복지의 수혜자로 호명되고, ‘문제 해결의 객체’로 그려지기 일쑤다. 이는 앨리스 웡이 가장 강하게 싸워온 바로 그 구조—장애시민의 입과 몸과 경험이 지워지고, 전문가·관료·정치인의 언어가 중심이 되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앨리스 웡의 작업은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의 장애운동은 장애당사자의 언어를 얼마나 자신의 중심축으로 세우고 있는가? 장애 서사 투쟁은 단순히 스토리텔링의 문제가 아니라, 운동의 전략이자 권력 배분의 문제다. 이야기의 권력을 누가 가지는가에 따라 정책의 방향도, 공공 담론의 구조도 바뀌기 때문이다. 예컨대 탈시설 논쟁에서조차 시설 측 이해관계자나 지자체의 재정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고, 장애당사자의 생애 서사—어디에서 누구와 살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선택—은 주변으로 밀려나곤 한다.

앨리스 웡은 “급진적 존재”를 주장했다. 이는 급진적인 정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이미 체제에 균열을 내는 정치적 행위라는 뜻이다. 한국 장애운동이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 감각이다. 이동권 투쟁이 왜 ‘특혜 요구’로 프레이밍 되는가?, 돌봄 통합 논의에서 장애시민은 왜 ‘서비스 대상자’로만 호명되는가?, 장애시민 예산 삭감이 왜 지방재정 논리로 정당화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장애시민의 존재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서사 위에서 작동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서사 자체가 전복되어야 한다. 미국 장애운동이 ADA 이후 ‘정책운동 → 문화운동 → 정체성운동’으로 확장되었던 것처럼, 우리 장애운동 역시 법·제도 중심의 싸움에서 서사·문화·권력·정체성을 중심에 둔 투쟁으로 이동해야 한다.

또한 앨리스 웡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전략은 연결(connection)이었다. 그는 장애운동을 흑인 민권, 퀴어 운동, 이민자 운동 등과 연결하며, 차별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사회 역시 장애를 고립된 정책 영역으로 다루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애는 재난, 정치, 도시계획, 주거, 노동, 돌봄, 젠더, 기후 위기 등 모든 사회적 장치 속에서 교차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면 앨리스 웡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또다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장애당사자의 언어로 세계를 다시 쓰라’고 말했다. 우리의 장애운동이 이 유산을 이어받는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거대한 정책 보고서보다도, 관료적 언어보다도, 예산 항목보다도 장애당사자의 언어다. 우리의 정책은 그 언어 위에서 재설계되어야 하고, 우리의 운동은 그 경험을 중심으로 다시 재편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장애시민에게 아직 ‘급진적으로 존재할 권리’를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묻고, 요구하고, 다시 쓰고, 존재를 드러낼 차례가 되었다. 앨리스 웡의 삶은 그 길을 이미 보여주었다. 남은 일은 우리가 그 길을 현실 속에서 더 치열하고 더 급진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될 터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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