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소아마비 생존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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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마비는 백신의 “승리”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후유증과 소아마비 후 증후군(PPS) 같은 변화 속에서 다시 싸워야 하는 생존자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라고 이 편집장은 진단한다. 따라서 국가는 이들을 ‘과거의 환자’로만 방치해선 안 되며, 통합적 건강·재활 지원과 존엄한 노년의 삶을 보장해야 하고, 그럼에도 끝내 살아남아 자기 삶의 속도를 새로 정의해온 생존자들을 우리는 응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소아마비는 백신의 “승리”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후유증과 소아마비 후 증후군(PPS) 같은 변화 속에서 다시 싸워야 하는 생존자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라고 이 편집장은 진단한다. 따라서 국가는 이들을 ‘과거의 환자’로만 방치해선 안 되며, 통합적 건강·재활 지원과 존엄한 노년의 삶을 보장해야 하고, 그럼에도 끝내 살아남아 자기 삶의 속도를 새로 정의해온 생존자들을 우리는 응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ChatGPT 이미지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참 모를 일이다. 지체장애를 갖고 살아온 세월이 반세기인데, 뚱딴지처럼 ‘소아마비 생존자’란다. 아금받게 살아온 세월 탓에 ‘생존자’라고 명명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소아마비 생존자’라니, 어울리지 않는 특별 대접을 받는 것처럼 영 민망해서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생존자(survivor)는 단순히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위기·폭력·재난·질병을 겪은 뒤에도 그 영향이 계속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소아마비 생존자(Polio Survivor)’란, 소아마비(poliomyelitis)에 감염되었다가 생존한 사람을 의미하며 단순히 과거에 병을 앓았던 사람이라는 의학적 범주를 넘어, 평생에 걸친 신체적·사회적·정책적 경험을 포함하는 삶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것일 터다. 흔히 ‘소아마비’를 사람들은 백신이 이긴 병으로 기억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나라 감염병 예방의 성공적인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사 한 방이나 약 몇 병을 통한 통계 그래프의 급락.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더는 없다”는 선언.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어린이를 대상으로 국가예방접종을 시행했고, 1983년 이후 국내 발병 신고가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발병이 없다는 선언 뒤에는 ‘남겨진 몸들’이 있었다. 감염병이 사라져도, 그 병을 겪은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아마비’가 남긴 것은 단지 증후군만이 아니라, 한 개인의 평생을 관통하는 시간표—통증과 피로, 보조기기의 무게, 계단 앞에서의 망설임, 그리고 “이제 다 나았잖아?”라는 무심한 사회의 통념이었다.

‘소아마비 생존자’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그들이 단지 과거의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의학은 소아마비에서 회복하면 상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뒤, 많은 이들이 다시 새로운 약화와 극심한 피로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아마비 후 증후군(Post-Polio Syndrome, PPS)’으로 불리는 현상이다. PPS는 급성 감염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롭게 나타나는 근력 저하와 피로(때로는 통증과 기능 저하)를 특징으로 한다. 병이 “끝났다”고 선언은 국가가 했지만, 생존자들은 오히려 새로운 시작—또 다른 싸움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그들은 ‘환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되었다. 국가의 방치는 대개 악의가 아니라 습관으로 이루어진다. 감염병 관리의 관점에서 ‘소아마비’는 성공적으로 통제된 질병이 되었고, 행정의 시선은 다음 감염병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은 복지제도의 한 칸에 갇히게 되었다. 어린 시절 ‘지체장애’라는 영역에 포함되어 노년의 몸이 새로 겪는 기능 변화는 별개의 문제로 취급되었다. 장애정책은 종종 정태적 장애를 전제로 설계되고, 건강정책은 노화로 퉁친다. 그 사이에서 소아마비 생존자들의 고통은 늘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었고, 제도적 관심에서 밀려났다.

그럼에도 연구는 뒤늦게나마 진실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1980년대 이후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소아마비 ‘후기 영향(late effects)’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본격화되어, 이들 생존자에게 필요한 제도적 관심을 환기시켰다. 연구 결과는 생존자들 개인의 의지로 신경과 근육의 피로를 이길 수는 없다는 점과 오히려 무리한 “정상화”는 몸의 고장을 앞당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아마비 생존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는 분명하다. 첫째, 자신의 몸을 믿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 “어제의 나”가 “오늘의 나”를 심판하게 두지 말 것. PPS는 오랜 시간이 지나 나타날 수 있는 변화이며, 증상은 개인마다 다르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보조기기는 단순히 보조도구가 아니라 존엄의 장치라는 거다. 그래서 각종 연구는 재활·보조기·보행 보조·맞춤 운동과 같은 개별화된 접근이 중요하다는 권고를 반복하고 있다. 셋째, 의료는 ‘치료’가 아니라 ‘동행’이 되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통증, 피로, 이동, 삼킴·호흡 문제까지—삶의 기능을 통째로 보는 통합적 관리가 필요하며, 생존자의 몸은 하나의 진단명으로 환원되지 않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굳이 이들의 주장을 정책적 언어로 말하자면, 국가는 소아마비를 근절했던 공로만큼 생존자들에게 남겨진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해질 수 있다. 우선 생존자 건강 실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후기 영향에 대한 진료·재활 접근성을 높이며, 고령기 장애와 만성피로·통증을 함께 다루는 서비스 체계를 설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생존자들의 수가 줄었으니 정책과 예산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원의 형태를 전환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이 칼럼의 마지막을 희망으로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희망은 때로 책임을 지우는 말이기 때문이기에 되레 응원하고 싶다. 나를 포함해 끝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살아남는 법을 매일 새로 발명해 온 사람들에게. 사회가 잊어도, 몸이 다시 고통에 시달려도, 우리는 이미 수십 년을 견뎌낸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생존자는 기적이 아니라 역사이며, 국가의 감염병 퇴치의 승리 서사에서 지워진 ‘증거’가 아니라, 그 승리의 대가를 몸으로 기록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 소아마비 생존자들은 이제라도 알아야 한다. 감염병을 이기는 것만이 공중보건이 아니라, 그 감염병을 통과한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공공의 윤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책임이 시작되는 자리에서, 나는 주장한다. 우리의 느린 걸음은 뒤처짐이 아니라, 세계의 속도를 다시 정의하는 방식이라고. 우리의 오늘은 남은 삶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이라고 말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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