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이드라인에서 예규로, 진전이자 출발선
- ‘권리’가 아닌 ‘지원’으로 남은 사법지원체계 아쉬워
- 예규, 재판장 재량에만 맡겨진 편의 제공
- 정기적 소통과 장애 감수성, 제도 너머 과제 남아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지난 26일 오후 2시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법원행정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접근 및 사법지원에 관한 예규 시행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박영재 법원행정처 처장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장애인단체장들과 공식적으로 만나 사법부와 장애계 간의 지속적인 소통 필요성에 공감하며 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국내 처음으로 사법지원예규 규정…의미 있어
2026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사법접근 및 사법지원에 관한 예규(이하, 사법지원 예규)」는 사법부가 장애시민의 사법접근 문제를 ‘내부 규범’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분명한 전진임에는 분명하다. 특히 사법지원 대상을 ‘장애인 등록’ 여부와 무관하게 폭넓게 정의하고(제2조), 민원·재판·등기·가사 등 사실상 법원이 관장하는 모든 절차에 적용하고 있으며(제3조), ‘사법지원은 정당한 편의 제공’이라고 규정(제2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다만, “노력한다.” “할 수 있다.”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등 접근성 보장(시설·정보·보조기기) 조항은 대체로 의무가 아니라 ‘임의’에 머물고(제5조~제7조), 핵심 조직인 사법접근센터 설치조차 “설치할 수 있다”는 임의로 규정(제8조)하고 있다. 이는 전국의 법원들이 같은 조건과 예산, 같은 인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센터별 격차를 조장할 수 있다고 장애계의 한 관계자는 우려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센터가 ‘모범 사례’로 운영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우선지원창구가 있으니 충분하다”는 말로 끝날 수도 있다.“는 거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사법지원 예규가 사법접근을 ‘권리’가 아니라 ‘지원’으로 설계했다는 점이다. 재판절차에서 사법지원은 재판장이 결정(제19조)하도록 했다. 그 결정을 위해 재판장이 장애유형·정도·선호 수단에 관한 질문을 하고, 필요하면 소명자료 제출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제19조 제2항)는 것은 사법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장애시민은 다시 한 번 “당신이 정말 어려운 사람임을 증명해 보라”는 심사대 앞에 놓인다는 것이다. 만일 지원이 권리라면,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제공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법지원 예규는 ‘필요성의 판단’을 재판장 재량에 묶어 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치명적인 공백은 거부되었을 때다. 민원 처리에서는 신청서 제출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지만(제17조), 재판절차에서 지원이 거부되거나 축소될 경우 당사자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기간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는 사법지원 예규에는 빠져있다(제17조~제20조). 말하자면 통지는 있으나(제19조 제3항), 구제는 없는 셈이다. 물론 사법지원 예규는 의미 있다. 시각·청각·발달·정신장애 등 유형별 지원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열거했고(제23조~제26조), 수어통역의 정확성을 위해 영상녹화를 ‘가능하면’ 고려하도록 규정했다(제24조). 다만 장애시민의 사법지원이 권리라면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여야 한다. 사법은 누군가의 선의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은 좀 더 촘촘하게 ‘권리’를 지원하고 있어
영국은 사법부가 HM Courts & Tribunals Service(HMCTS)를 통해 장애시민을 포함한 ‘취약한 법정 이용자(vulnerable court users)’를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정책(Reasonable Adjustments Policy)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수어통역, 쉬운 언어(Easy Read), 법정 출입·대기 공간 조정, 영상 재판, 보조인 동석 등을 권리로서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지원 거부 시 이의제기 절차도 갖추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예규와 유사한 내용을 이미 ‘행정 재량’이 아닌 ‘청구 가능한 권리’로 정착시킨 사례다. 미국 역시 연방법원이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ADA)에 따라 장애시민의 사법절차 접근권을 보장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 각 주 법원과 연방법원은 ADA 코디네이터를 두고, 통역·보조기기·대체자료·온라인 출석 등을 제공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행정적·사법적 구제 절차가 가능하다. 즉, 사법지원은 ‘법원 내부 지침’ 이전에 이미 연방법상 강제되는 권리다. 호주와 캐나다도 비슷하다. 호주는 각 주 사법부가 장애인 사법접근 판사 실무 지침서(Disability Access Bench Book)를 통해 법관에게 장애 유형별 재판 운영 원칙을 교육하고 있으며, 캐나다는 접근성 법률에 따라 법원이 제공해야 할 편의의 범위를 명문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각 국가들은 이미 장애시민의 사법접근을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이미 일상적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출발선에 선 사법지원 예규, ‘권리’로 정착해야
법원행정처가 진정으로 헌법상 재판청구권을 차별 없이 보장하려 한다면, 예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 사법접근센터 설치를 최소한 권역별로 의무화하고, 예산·인력의 국가적 지원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 둘째, 사법지원 거부·축소 시 즉시 이의제기 가능한 절차와 재심사 기준을 규정해야 한다. 셋째, 대체자료 제공·통역 제공 등 핵심 조치는 ‘노력’이 아니라 ‘기한 있는 의무’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협조자수당은 임의가 아니라 원칙 지급으로 설계하고, 기존 급여와의 관계는 장애인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사법지원 예규는 이제 막 출발선을 넘어셨다. 그러나 출발선에서 “할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한다면, 장애시민은 또다시 이미 출발한 예규 앞에 초조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기왕에 제정된 사법지원 예규는 장애시민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권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규칙과 책임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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