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유엔을 박살내려는 좌충우돌 트럼프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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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평화위원회 구상과 유엔의 약화는 국제 평화 질서를 ‘권리의 체제’에서 ‘거래의 체제’로 바꾸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권은 가장 먼저 주변부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고 이 편집장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편집장은 평화가 효율과 권력에 의해 재편되는 순간, 국제규범이 보호해온 장애시민의 권리는 기억되지 못한 채 가장 조용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트럼프의 평화위원회 구상과 유엔의 약화는 국제 평화 질서를 ‘권리의 체제’에서 ‘거래의 체제’로 바꾸며, 그 과정에서 장애인권은 가장 먼저 주변부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고 이 편집장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편집장은 평화가 효율과 권력에 의해 재편되는 순간, 국제규범이 보호해온 장애시민의 권리는 기억되지 못한 채 가장 조용히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 ChatGPT 편집 이미지
  • 트럼프의 평화위원회, 국제질서 재편의 그늘 속 장애시민들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점입가경이다.

트럼프는 이민자 체포를 위해 국토안보부 산하 ICE의 단속을 명령했고, 2026년 1월, 미네소타주에서 시민 두 명(알렉스 프레티, 르네 굿)이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게다가 덴마크 령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설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자동차에 대한 상호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평화를 바라던 세계인들은 트럼프의 전횡에 경악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조차 없어 전전긍긍이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이란 등 세계 곳곳에는 전쟁과 학살로 신음하고 있지만 그 한가운데에서 유엔은 회의를 열고, 결의안을 작성하며, 유감을 표명할 뿐이다. 이제는 누구도 더 이상 유엔이 전쟁이나 학살을 멈출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평화를 말하는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가장 무력한 열외자가 되었다. 이 틈을 비집고 말썽꾸러기 트럼프는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를 발표했다. 트럼프는 유엔이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조직이라고 비판하며, 미국 주도의 새로운 평화 중재 기구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거다. 가자지구 재건과 중재를 명분으로 한 이 기구는, 점차 유엔을 대체할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국제사회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런데 평화위원회는 유엔과 달리 전통적인 다자주의 기구와는 전혀 다르다. 회원국 자격에는 거액의 기여금이 필요하고, 의사결정 구조는 미국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국제 조약도, 헌장도 없다. 평화는 규범이 아니라 거래가 되고, 중재는 원칙이 아니라 권력의 계산이 된다.

하기야 유엔의 어설픈 분쟁 대응 방식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트럼프의 주장은 새삼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거부권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침략국이면서도 상임이사국이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제재하는 결의를 막았다. 가자지구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방패가 되어 휴전 결의를 반복적으로 무산시켰다. 유엔은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을 지켜보면서도 결의하지 못했고, 결의하지 못하면서도 입으로는 평화를 운운했다. 고소를 금치 못하겠다. 하기야 유엔은 애초에 강대국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전쟁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체제일 뿐이다. 그래서 유엔을 중심으로 한 평화는 한낱 이상(理想)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유엔 체제에서 장애인권은 비교적 늦게, 그러나 가장 규범적으로 정교하게 구축된 영역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6년 채택된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은 장애를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재정의했고,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각국의 이행 상황을 심사하며 국제적 기준을 형성해 왔다. 이 체제의 핵심은 강제력이 아니라 규범이다. 보고서를 제출하고, 권고를 내리고, 국제 여론을 통해 국가를 압박한다. 체계는 지나치게 게으르고 비효율적이지만, 적어도 장애시민의 권리는 ‘국제법 형식’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손톱만큼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평화위원회 구상은 이 규범의 세계와 거의 무관한 듯하다. 이 기구는 헌장도 없고, 인권 규약도 없으며, 국제조약에 근거하지도 않는다. 참여 조건은 기여금과 정치적 동맹 여부에 가깝고, 의사결정은 미국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된다. 평화는 원칙이 아니라 관리의 문제가 되고, 중재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영향력의 배분이 된다. 이 구조 속에서 장애인권은 애초에 독립된 의제로 존재할 공간조차 없게 될 것이 뻔하다.

만약 이 구상이 현실화되고 유엔의 위상이 약화된다면, 가장 먼저 흔들릴 영역은 군사와 외교가 아니라 인권 규범 체계일 것이다. 유엔의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국가들이 다자 규범보다 개별 동맹과 거래를 우선시하기 시작하면, CRPD 이행은 ‘권고’가 아니라 ‘선택’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CRPD를 비준하지 않은 국가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엔 체제에서 이탈할수록, 장애인권은 가장 먼저 국제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 유엔 체제는 최소한 인도주의 원칙과 장애포괄적 지원을 명시적으로 요구해 왔다. 난민, 재건, 구호 사업에 ‘장애 포괄성’을 넣도록 권고하는 등 국제 기준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식 평화체제에서는 이런 원칙이 필수 조건이 될 이유가 없다. 평화위원회의 우선순위는 안정, 통치, 치안, 재건 투자 등으로 예측되는 만큼 장애시민의 접근성, 권리 보장, 차별 금지는 협상 테이블의 부속 항목으로 밀려나게 될 터다.

결국 트럼프의 전횡으로 변화가 되는 세계질서는 한 가지 위험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평화 없는 인권은 유지될 수 있는가?

유엔 체제는 실패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평화와 인권은 분리될 수 없다는 규범을 유지해 왔다. 트럼프의 구상은 그 연결고리를 무지막지하게 끊어낸다. 전쟁을 멈추는 것이 목표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권리가 희생되는지는 부차적 문제가 된다. 장애시민은 그 희생의 가장 조용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발언권도, 협상력도, 지정학적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강대국의 전횡이 아니다. 이는 ‘권리의 질서’에서 ‘거래의 질서’로의 이동이다. 유엔이 무력해진 자리에 들어설 새로운 평화체제는 더 효율적일지는 모르지만, 더 정의로울 가능성은 글쎄…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은 전쟁이 아니라, 국제규범이 보호해 왔던 장애시민을 포함한 약자가 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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