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한 해 동안 힘드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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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 한 잔처럼, 다시 찾아올 회복의 시간/ 이미지=제미나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새해 벽두부터 갑작스레 찾아온 감기는 꽤 강력하다. 운동도 지인과의 약속도 학년말 업무 계획마저 수정할 수밖에 없다. 열흘만 잘 견뎠으면 방학인데 반갑지 않은 손님은 꼭 가장 바쁜 시기에 제일 세게 찾아오는 것만 같다. 야심 차게 세웠던 신년계획이 시작부터 휘청거린다.

다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보려고 했지만,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를 않고 새로운 계획을 구상해 보려던 지인과의 만남도 뒤로 미루어졌다. 마감 기한이 분명한 학교 업무만을 겨우 꾸역꾸역 감당하는 것도 버겁다.

얼른 시간이라도 지나가야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시계는 더디 움직이는 것 같고 잠이라도 푹 자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잘 자던 햇살이도 새벽에 깨는 횟수가 갑자기 늘어났다. 급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업무는 왜 이럴 때 찾아오는지… 직장에서도 잠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감기 하나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겪는 당사자 입장에서 심한 감기는 삶의 모든 계획과 리듬이 흐트러져 버리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감기로 힘들어 봤자 일주일이고 죽을 것같이 아픈 것 같지만 그 또한 기분 탓일 뿐 그 정도는 아니었다. 예상도 못 하게 찾아왔던 감기는 역시나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물러갔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도 말끔해지던 순간은 잊히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만 선명히 남는다.

한 해를 돌아보는 요즘 많은 사람은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작년을 보냈다며 과거의 고단함을 푸념하듯 늘어놓지만, 대부분은 기억의 착각일 뿐 우리의 한 해 안에는 감기 같은 시간도 있었고 감기가 나아진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때로는 문득 컨디션이 좋지 않다 느끼는 날도 있었지만 믿기 어려울 만큼 모든 일이 잘 풀리고 몸마저 가볍게 느끼는 때도 있었다.

“작년 한 해 너무 힘드셨죠?”라고 내게 물으면 얼마나 힘들었는지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지만 찬찬히 돌아보면 나에게 있어 다시 없을 만큼 특별한 한해이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지를 배웠지만 아들과 손잡고 걷는 기적 같은 순간을 선물 받기도 했다. 전에 없이 아내와 다투기도 했지만 가장 사랑하는 이와 가족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진하게 느꼈다.

주말마다 쉬지 못하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은 체력적으로 벅찬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가족 유튜브 채널이 개설되고 ‘인간극장’에도 ‘뉴스공장’에도 출연했다. 매주 새로운 글감을 구상하고 글을 쓰는 일은 때때로 굉장한 부담이었지만 내 이름 앞에 작가라는 새 호칭이 붙여진 첫해이기도 했다.

365일이라는 또 한 번의 긴 날들을 채워가기 위해 많은 이들은 설렘으로 계획을 만들지만, 이번에도 불현듯 감기가 찾아올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마주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감기는 나을 것이고 뜻하지 않았던 기쁜 일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렇게 살고 있다.

감기로 진하게 고생했던 날들을 기억할 수 있는 건 회복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이고 아픈 순간을 느꼈다는 건 대부분의 시간을 건강의 익숙함으로 채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 참 힘들죠?”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왜 그런지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치우친 기억 탓이다.

나는 행복하다. 꽤 많이 행복하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다. 잘 기억해 보자.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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