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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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내용이 적히지 않은 현수막 5개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 김소하 작가
▲아무런 내용이 적히지 않은 현수막 5개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 김소하 작가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철도 예산 확보”, “△△IC 신설 확정”, “국비 ○천억 원 유치”.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시의 표정이 달라지고 있다. 출퇴근길 전봇대와 육교, 담장과 가로수 사이로 형형색색의 현수막이 걸렸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그 문장들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조차 묻지 않게 된다.

정치인들이 성과와 미래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것은 고속도로와 철도, 교량 같은 대규모 SOC(Social Overhead Capital, 사회간접자본) 토목 공사다. 지도 위에 표시할 수 있고,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며, 개통식과 준공식이라는 장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돌봄이나 사회복지제도 확대를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모습을 보기는 매우 힘들다. 시민들의 삶을 지탱하는 제도, 시민들의 안전한 삶을 위한 정책은 선거의 언어로 쉽게 번역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무엇을 성과로 인정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단서다.

막스 베버는 정치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나누었다. 신념윤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따르는 태도라면, 책임윤리는 그 선택이 초래할 결과까지 감당하는 자세다. 베버에게 정치는 무엇보다 책임윤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정치적 결정은 언제나 타인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정치가 책임윤리보다 성과주의의 논리에 더 가까워져 있다는 점이다. 성과주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의 내용이 아니라 가시성이다. ‘얼마나 빨리 완성되었는지’, ‘얼마나 크게 만들었는지’, ‘얼마나 많이 했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사회복지제도의 확대는 늘 뒷순위로 밀린다.

그 결과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제도들은 ‘시간이 걸리는 일’, ‘예산과 품이 많이 드는 일’, ‘설명하기 어려운 일’로 분류된다. 돌봄 노동자의 처우 개선,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빈곤층의 주거 안정 같은 정책들은 단기간에 성과를 연출하기 어렵다. 개통식을 하지도 않고, 리본을 자르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는 본래 불편한 선택을 감당하는 일이다. 책임윤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가 있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당장 박수받지 못하더라도, 그 결정이 누군가를 지킨다면 정치인은 그 결과를 선택해야 한다. 이를 피하는 것은 판단 유예가 아니라 책임 회피다.

SOC는 도시를 연결하지만, 사회복지제도는 사람을 지킨다. 도로와 철도는 이동의 속도를 높이지만, 돌봄과 복지는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전자를 ‘발전’이라 불러왔고, 후자를 ‘비용’이라 불러왔다.

정치가 사회복지제도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몰라서가 아니라 불리하기 때문이다. 드러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돌봄은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고, 복지는 사진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성과주의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삶을 지탱하는 정책들은 늘 뒤로 밀려왔다. 이는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태도 문제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는 무엇을 성과로 인정해 왔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동시에 무엇을 의도적으로 성과의 범주에서 배제해 왔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정치가 도로와 교량만을 업적으로 기억하는 한, 돌봄과 복지는 언제나 예외로 남을 것이다.

정치는 중립적이지 않다. 무엇을 우선에 두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보호받고, 누군가는 방치된다. 책임윤리는 바로 그 분기점에서 정치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은 아니며, 표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이제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얼마나 크게 남겼는가가 아니라, 그 결정으로 누가 무너지지 않았는가다. 정치가 사람의 삶을 다루려 한다면, 성과의 기준은 완공된 구조물의 숫자가 아니라 지켜낸 삶이어야 한다.

시민에게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도로와 건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살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제도와 작동하는 안전망,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치가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그 책임은 분명하다.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선택이며, 책임윤리를 포기했다는 고백일 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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