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법 504조 위협하는 미국의 역주행, 우리나라 탈시설 정책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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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부 주의 소송으로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권이 흔들리는 현실은, 최근 드러난 색동원 사건처럼 장애인 시설·착취 행위들이 공통적으로 장애인을 한 공간에 수용하고 외부와 단절시키는 구조 속에서, 당사자의 선택권과 문제 제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학대와 착취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미국 일부 주의 소송으로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권이 흔들리는 현실은, 최근 드러난 색동원 사건처럼 장애인 시설·착취 행위들이 공통적으로 장애인을 한 공간에 수용하고 외부와 단절시키는 구조 속에서, 당사자의 선택권과 문제 제기가 원천적으로 차단된 채 학대와 착취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 위 사진은 197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애인 권리 보호를 위한 제504조의 즉각적인 시행을 촉구하며 벌어진 '504 점거 농성(504 Sit-in)' 당시 모습. 이 농성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비폭력 연방 건물 점거 기록으로 남았으며, 이후 장애인차별금지법(ADA) 제정의 기틀이 되었다. Ⓒ 사진작가 홀리먼(HolLynn D'Lil), 샌프란시스코 공공 도서관 아카이브
  • 미국 일부 주, 장애인 지역사회 통합 의무에 정면 도전
  • “시설 격리는 차별”이라는 올름스테드 판결의 의미
  • 제504조가 지켜온 장애인 권리, 왜 다시 공격받고 있나
  • 미국의 소송이 우리사회 탈시설 정책에 던지는 질문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최근 미국에서 텍사스주를 포함한 알래스카, 플로리다, 인디애나, 캔자스, 루이지애나, 미주리, 몬태나, 사우스다코타 등 9개 주 정부가 장애시민의 지역사회 통합을 보장해 온 연방 규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고 장애인권리옹호단체인 DREDF(Disability Rights Education and Defense Fund-https://dredf.org/)가 전했다. 9개주가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미국 재활법 제504조와, 이 조항을 토대로 확립된 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권해체다.

재활법 제504조는 미국의 장애인 권리의 출발점이 된 법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재활법 제504조는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조항으로,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모든 프로그램과 활동에서 장애인이 배제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도록 명확히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504조는 장애시민 권리 보호를 위한 최초의 연방 민권법으로, 이후 미국 장애인법(ADA) 제정의 중요한 기반이 되며 장애인의 평등권 실현에 기여해 왔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도 크다.

이 조항이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로 구체화된 계기는 199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올름스테드(Olmstead)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장애인을 불필요하게 시설에 격리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며, 장애인이 ‘가장 통합된 환경’에서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고 판시했다. 다시 말해 시설에 머무는 것이 불가피해서가 아니라, 제도와 행정의 편의 때문에 장애시민을 격리한다면 그것 자체가 차별이라는 거다. 나아가 올름스테드 판결은 단순한 정책 권고가 아니라, 장애인의 지역사회 기반 생활과 상호작용이 법적으로 보호되는 권리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국 장애인 정책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현재 주 정부들이 문제 삼고 있는 연방 규정 역시 이 판례의 연장선에 있다. 해당 규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가능한 한 많은 상호작용과 참여를 누릴 수 있는 ‘통합된 환경’에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차별로 본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텍사스주 등 9개 주 정부는 이러한 의무가 과도하다며, 연방정부가 주 정부에 장애인 정책 방향을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미국 주 정부들이 장애인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는 텍사스 대 케네디 소송의 수정판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소송에서는 텍사스 주를 포함한 16개 주가 제504조 자체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보건복지부가 2024년에 발표한 개정된 제504조 규정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그러자 장애인단체의 거센 반발과 대응에 직면하여, 해당 주들은 제504조의 위헌 주장을 철회했다. 그럼에도 또 다른 주들은 개정된 규정에 대한 이의 제기를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 정부들은 연방 정부에 세 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제504조의 전체 규정이 위헌임을 선언할 것, 보건복지부가 해당 규정 전체를 시행하는 것을 막아야 하며, 특히 보건복지부가 주정부에 장애인을 시설 수용의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정책적 주장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일부 주가 제기하는 “재정 부담”과 “행정의 어려움”이라는 논리는 우리에서도 익숙하다. 그러나 제504조와 올름스테드 판결이 보여주듯, 장애시민의 지역사회 삶은 복지정책의 선택지가 아니라 차별을 막기 위한 법적 권리의 문제다. 장애시민이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국가가 결정하는 순간, 권리는 다시 보호와 관리의 대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이 논란은 우리나라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장애인단체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통해 장애인의 평등과 사회참여를 보장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협약 제19조는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촉구하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시설 중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드러난 색동원 사건과 같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벌어진 사태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삶을 권리가 아니라 관리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설 안에서 반복되는 학대와 방임은 일부 종사자의 일탈이 아니라, 장애인을 한 공간에 모아 통제하는 구조가 만든 결과라는 거다. 장애인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색동원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번 소송은 오랜 시간 쌓아온 장애인 권리의 기준은 법과 제도의 해석이 바뀌는 순간,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 역시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을 선언적 목표로만 남겨둘 것인지, 아니면 권리로서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장애인의 살아갈 곳은 행정의 편의가 아니라, 장애당사자의 권리로 결정돼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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