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이금자 집필위원] 나는 아는 사람이 많지만 친구는 많지 않다.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친구가 없다는 것은 청각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나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동창이 없다.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동창 역시 없다. 열두 살에 겪은 학교폭력으로 친구를 만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학교를 떠났다. 지금이라면 어린 친구들이 못살게 굴어도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인터넷과 통역 앱으로 어떻게든 버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다. 들리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할 수 있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전화는 그림의 떡이 되었고 학교 수업은 따라갈 수 없었다. 소통의 기본이 막히자 세상과는 순식간에 멀어졌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대. 소통할 방법조차 없던 그 시간 속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꿈도 기대도 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미래를 상상하기보다 하루를 숨듯이 넘기는 것이 전부였다.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드러나는 대신 숨는 것, 버티는 대신 사라지는 것,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공백은 지금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건청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청각장애인은 특히 더 그렇다.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늘 같은 자리에 머문 채 살아간다. 빠져나오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을 탓하고 자신을 탓하면서 말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기다린다고 해서 누군가 손 내밀어 주지는 않는다. 나는 청각장애가 있지만 들리지 않을 뿐 말은 했고 소통도 된다. 그럼 된 것이라 생각했다. ‘좀 못 들으면 어때.’ 내가 괜찮다는데, 남들이 듣지 못해 어쩌냐고 하는 말은 흘러버렸다.
주저앉아 있을 시간에 차라리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산다면 조금은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결국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살아줄 수는 없었으니까. 내 삶은 내가 끌고 가야 했다. 하지만 속마음을 말하자면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이유 없이 주눅이 들었고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미움 받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위축, 이유 없는 불안. 그것은 청각장애인이 안고 살아가는 열등감이었고 자격지심이었다. 겉으로는 씩씩한 척했고 자신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계속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잘 버티고 있다고 믿고 싶었지만, 사실은 버티는 법만 배운 채 살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청각장애인에게 친구란 무엇일까. 모든 것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나에게 맞춰주고 나를 위해 애써주며,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가 그 정도도 못해줘?’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깔린 채, 무식할 정도로 당당했던 내가 거기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당당함이라기보다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과 나 자신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 낸 과장된 표현. 들리지 않아서 자라지 못한 지식과 경험이 오만한 태도로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도 사람이다. 건청인과 다를 것 없이 친구란 서로 주고받는 관계다.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맞춰주고 참고 희생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장애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였다. 친구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눔을 하는 사람이다. 이해 받기를 원하는 마음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서로에게 있을 때 비로소 친구가 된다. 그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돌아왔다. 이제는 안다. 친구란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서로 이해해 가는 존재라는 것을.
청각장애인에게 사람이란 무엇일까. 나는 농인과의 만남에서도 건청인과의 교류에서도 언제나 진심을 다해왔다. 그러나 청각장애인은 농인과의 관계에도 건청인과의 관계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수어가 빠른 농인과의 대화에서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구어로 말하는 건청인과의 대화에서는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 순간이 남는다. 그 소통의 틈에서 종종 자신을 탓했다. ‘왜 그때 조금 더 신경 쓰지 못했을까.’ 밀려오는 미련과 아픔은 늘 나의 몫이었다. 알아듣지 못한 것은 상황이지만 마음에 남는 것은 자책이었다.
건청인과는 소통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다름에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정’이라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 우리는 ‘일’로 만나고, ‘일’로 이어지는 사무적인 관계에 머무는 것이다. 그것이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거기에는 기대할 것이 적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련을 이제는 내려놓았다. 과거에도 혼자였고 지금도 혼자다. 과거의 내가 외로웠다면 지금의 나는 외롭지 않다. 이 차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다. 그것이면 됐다. 이 길은 누가 만들어 준 길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온 길이다.
퀼트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담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내가 먼저 만나고 싶다는 카톡을 보냈다. 찾아주지 않으면 찾아가면 된다.
“쌤! 잘 지내시나요? 우리 점심같이 할까요?” 한참 있다가 답이 온다.
“아~ 잘 지내세요? 점심이요! 다음주 시간이 되는데 만날까요?”
“네 저는 다음주 어느 때든 시간 됩니다.”
늘 비어 있는 시간이지만 바쁘다는 내색을 나도 한다.
“그럼, 화요일 오후 2시에 수업이 있는데 그 전에 점심같이 먹어요. 광화문에서…”
“네~ 그래요. 그날 뵈어요.” 그렇게 만난 그날의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무언가 정보를 얻으러 갔던 자리에서 정보는커녕 신세 한탄 같은 이야기만 쭉 듣다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를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들리지 않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나와의 대화가 편하고 좋다고. 왜일까. 나는 온 정신을 쏟아 상대를 바라보고 대화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청각장애인이 갖는 장점이다. 눈으로 듣는 대화 방식이기에 정신이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말은 대부분 알아듣고 상대의 표정과 입 모양으로 읽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않는 나를 사람들은 편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다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 답답한 사람을 누가 계속 만나고 싶어 할까. 나는 맞장구를 쳐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역할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남의 이야기, 남의 자랑을 실컷 듣고 돌아오곤 했다. 그 과정이 늘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 틈에 스며들었다. 크게 끼어들지는 못했지만 완전히 밀려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왔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퀼트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다. 작품은 혼자 만들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늘 사람들과 연결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공동 전시회도 함께 치른다. 겉으로는 혼자 작업하는 작가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혼자가 아니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지만 친밀해지지는 못한다. 집중력이 높다는 것은 나의 장점이다. 한 작업에 오래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전시회장이나 모임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한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대화가 가능하지만 서로가 자기 말을 하는 상황에서는 끼어들 수가 없다. 그것이 청각장애인의 현실이다. 건청인은 어디에서 말이 나오든 소리의 방향을 알아듣고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도 않는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말이 오가고 분위기가 이어지지만 그 한가운데서 종종 멈춰 서게 된다. 같이 있지만 완전히 함께하지 못하는 순간들. 그 침묵의 간격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사람들 곁에 서 있다.
예를 들면 바다 이야기를 하다가 산으로 화제가 바뀌는 중이었는데 내가 바다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지나가 버린 바다, 그리고 뻘쭘함에서 심장이 뛰었고 부끄러웠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랬다. ‘어! 그 말은 지났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소리 없이 바라보던 눈빛에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받아들이는 정보가 늦어서 벌어지는 헤프닝은 이 외에도 많다. 그리고 하나 깨닫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말을 실천한다. 알아도 몰라도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좋게 말하면 신비주의가 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멍청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보도 뭔가는 할 수 있다.
친구는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사람, 편견 없이 나의 다름을 마주 보는 사람이다. 돌아서서 부르면 들리지 않아 마주 볼 수 없지만 앞에서 부르면 미소로 대답하는 ‘어!’ 하면 ‘아~’ 하는 친구, 다른 친구들의 소소한 뒷담화도 하고 부당함에 욕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 장애는 장애일 뿐 그렇게 별다를 것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 자주 만나지 못해도 어제 만난 듯 어색함 없이 수다 떨 수 있는 사람이 친구다. 내게 이런 친구가 단 한 사람 있다. 멀리 다른 나라에 살고 있다.
일로 만난 사람들이 다름을 이해해 주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일로 만난 인연은 상처받을 일도 상처 줄 일도 없이 같은 곳을 보면서 가는 경쟁자이자 협력자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더는 주눅 들고 자격지심에서 가슴 쓸어내리는 일이 없어진 사람 대 사람이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순간부터 삶이 지옥이 될 수는 있지만 이겨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늙으면 누구나 귀가 들리지 않게 되니까. 청각장애로 인해 조금 빨리 들리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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