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자의 소리와의 전쟁] 함께 그리고 더불어

33
▲서로 다른 모습으로 손잡고 함께 나아가다 ©이금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손잡고 함께 나아가다 ©이금자
▲이금자 더인디고 집필위원
▲이금자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금자 집필위원] 건청인과 함께 일하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느꼈다. 들림과 안 들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천지 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거리였다. 그 차이는 말로 설명되기보다 몸으로 먼저 와닿았다. 가슴 안으로 스며드는 싸한 아픔, 나만 느끼는 고립감. 분명 눈앞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외면당하던 투명한 나. 그들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세계에 있지는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매 순간 긴장했고 매번 혼자였다.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보다 더 아픈 것은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는 태도였다. 물론 이해해 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조금 기대한 내 마음의 소리가 있었다. 그 무심함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으로 나를 밀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젊은 날에 겪었던 지난 일이다. 시간은 많은 것을 데려가지만 어떤 것들은 남겨둔다. 나는 어느 순간 그 모든 감정을 넘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처가 되었을 일들이 이제는 조용히 흘러간다. 늙음은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늙음은 평온을 주기도 한다. 늙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된다. 젊은 날의 아픔이 나이 들어 치유가 되었다.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이유로든 나와 너는 결국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우리’가 되기까지 청각장애인이 감내해야 하는 시간은 길고 아프다. 뼛속까지 아파봐야 비로소 사람이 되고 친구가 된다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나’와 ‘너’는 익숙하지만 함께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다. 청각장애인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길은 결국 홀로 걷는 길이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도움이 주어지지 않는다. 도움은 요청해야만 얻을 수 있다. 그 요청을 위해서는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하고 이유를 설명해야 하며 때로는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도 견뎌야 한다. 외면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다.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느끼는 것이다.

묻지 않으면 모른 척하고 말하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청각장애인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장애인의 일상은 겉으로 보기에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같은 책임을 짊어진다. 그러나 같은 일상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의 무게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청각장애인만 느끼는 무거움이다.

끼어들어도 되지만 끼어들기 어려운 자리, 의견을 말해도 되지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의견. 어린 시절 친구가 내게 했던 말 그대로 나는 벙어리가 되어버린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들어갈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다.

“지금 어느 부분에 대한 이야기죠?”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한다.

“작품 크기와 마감 날짜에요.” 통역앱이 없던 시절이다. 모임에서 회의가 끝나면 머리는 깨지듯 아프다. 이 과정은 죽을 때까지 따라붙는 내 운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맙게도 현대를 살고 있는 나는 핸드폰의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고 오히려 즐기고 있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사회는 아니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나는 어느새 청각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 사회를 살아가고 있었다. 들리지 않을 뿐이었다.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으려 애썼고, 그래서 그대로 살아왔다. “희망이 있는 자만이 앞날을 신경 쓴다.”
영화 〈링고의 귀환〉에 나오는 대사다. 이 말이 마음에 남았다. 미래가 걱정되고 계획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앞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곧 희망이다.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미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걱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약속을 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들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앞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나는 나를 증명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완전히 체념한 사람은 미래를 미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이미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워버렸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어진다. 하지만 미래가 여전히 신경 쓰인다면 그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아직 기대를 내려놓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도 내가 들리지 않아도 체념하지 말자. 상황이 나를 막을 수는 있어도 나의 의지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계속 생각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에게 길은 반드시 생긴다고, 또 노력하고 사유하는 사람에게 ‘신’은 분명히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을 믿는다. 그 손길은 기적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일 수도 있고, 우연일 수도 있고, 용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분명 손길이다. 들리지는 않지만 나는 인생을 혼자 살아왔다. 아홉 살 청각장애인이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완전한 혼자였다. 의식주는 해결되었지만 배움과 도전에 조력자가 없었다. 부모님은 그저 사고 없이 프지 않고 자라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생각 없이 산다면, 놀고 먹고 자는 삶은 어쩌면 천국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아가 형성되고 세상을 알아버린 아이는 가만히 머물 수 없었다. 들리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며 자라나야 했다. 들리지 않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보려고 애썼고, 혼자인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 길을 만들었다. 요즘 시대는 다르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세상이 등을 돌리지 않는다. 세상으로 나올 의지만 있다면 사회는 두 팔을 벌려 맞이하려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분명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나는 그 변화를 너무 늦게 만났지만 그래서 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들리지 않아도 세상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질병이 아닌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가는 시대에, 건강했던 신체가 불편해졌다고 해서 마냥 좌절하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는 끝이 아니라, 한계에 도전하며 새롭게 얻어지는 또 다른 삶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를 갖게 되면 두 번의 인생을 산다.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삶과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 다르지만, 결국 같은 삶이다. 방식이 달라질 뿐 삶의 무게나 의미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의 젊은 날은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왔다.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알 방법도 없었다. 솔직히 놀랐다. 그 안에 담긴 사회의 노력과 변화에 크고 위대한 감정을 느꼈다. 장애를 부러워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의 젊은 장애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그들은 여전히 부족한 환경 속에 있지만 과거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아니었다. 최소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되어 있었다.

말이 조금 거칠지 모르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인권과 기회를 주고 있다. 도전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모험을 응원하고 있다. 그 사실이 고맙다. 지금의 이 변화는 누군가의 삶을 분명히 살리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사는 삶이니까.

[더인디고 THE INDIGO]

청각 장애 퀼트 작가 퀼터스입니다. 수어는 배웠지만 잘 하지 못합니다. 제가 사는 세상은 비장애인 사회입니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살아가고 있는 청각장애인의 삶과 일,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0 Comments
Langu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