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형사재판은 ‘사회적 책임’ 언급, 민사는 부모 감독의무 인정
- 성인 자녀의 부모는 언제까지 보호의무자인가, 논란
- 대법원•외국사례와 충돌…성년 자녀 감독의무는 예외적
- 돌봄의 사적 부담 가중… 국가 책임과 제도 개선돼야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성인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의 방화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부모가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보험사가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부모에게 약 4억 3천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전체 손해액 약 14억 원 중 30%를 인정한 셈이다.
사건은 2023년 10월 21일 새벽 서울의 한 아파트 지하 분리수거장에서 발생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20대 A씨가 종이상자에 불을 지르면서 분리수거장이 전소되고 외벽과 주차장 일부가 훼손됐다. 일부 주민은 연기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다. A씨는 25세의 자폐성 장애가 있어 구속 기소됐다가 1년가량 수감 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A씨의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하면서도 “24시간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고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성인 자폐성 장애인의 돌봄을 부모 책임으로만 맡겨둘 수 없다면서 이는 “국가와 사회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판결문에 명시한 바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별도로 A씨 부모를 상대로 14억 원대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보험사 손을 들어주었다. 우선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이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에 해당하며 부모는 ‘보호의무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사건 나흘 전 유사한 방화 시도와 흉기 소지 배회 전력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감독의무 위반이 인정된다고 보았다. 다만 24시간 통제의 한계를 고려해 배상액을 전체 손해의 30%로 제한했다.
이번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와 배치된다는 의견이 있다. 그동안 대법원은 “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감독의무 책임은 예외적으로만 인정된다”고 판시해왔다. 특히 현실적 지배·감독 관계와 구체적 위험의 예견 가능성이 입증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의 반복 방화 사건에서 부모 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있었지만, 이는 당일 1차 방화 이후 추가 위험을 인지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못한 점이 판단 근거였다.
■ 발달장애와 정신질환의 장애 특성이 같다?
특히 이번 A씨 부모에 대한 배상 판결은 발달장애인을 정신질환자로 포섭해 보호의무자 개념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논쟁적이다.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정도가 심한 자폐성 장애’가 있으며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판결문에는 “성인 장애인 돌봄을 부모 책임으로만 맡겨둘 수 없고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취지도 포함됐다. 반면 민사소송에서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법상 ‘보호의무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먼저 따졌다. 보험사는 「정신건강복지법」 제39조를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민법상 후견인 또는 부양의무자를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로 규정한다. 재판부는 발달장애인이 정신건강복지법상 정신질환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부모를 보호의무자로 보았다. 반면 A씨 부모는 “발달장애와 정신질환은 법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이며 발달장애인복지법에는 보호의무자 규정이 없다”고 맞섰다. 또 다른 쟁점은 A씨 부모가 보호의무자로서 감독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다. 법원은 사건 나흘 전 유사한 방화 시도와 흉기 소지 배회 전력 등을 근거로 부모가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24시간 통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과 정신질환자 문제에 국가 책임도 존재한다는 점을 참작해 책임 비율을 30%로 제한했다.
이번 판결로 정신장애와 발달장애를 동일한 법적 틀에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은 주로 치료·입원·응급조치 등 위기 개입을 전제로 한 체계이며, 발달장애인복지법은 권리보장과 지원 중심의 체계를 갖는다. 이번 판결은 두 개념의 실질적 차이가 없다고 보았으나, 향후 항소심에서는 법체계와 입법 목적의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 대법원 판례, 보호자의 인지 가능성 개별적 판단해야
관련 대법원 판례는 성년 자녀의 불법행위에 대해 부모의 감독 책임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왔다. 2021년 선고된 판례에서는 양극성 정동장애가 있는 성인 자녀가 반복적으로 방화를 시도한 사안에서 부모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대법원은 “감독 책임 판단 시 동거 여부, 생활관계, 위험 전조의 구체성, 보호자의 인지 가능성 등을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성년이라는 이유로 부모의 책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적으로 책임이 인정되는 것도 아니라는 취지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2조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법적 능력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권리의 주체일 뿐 아니라 법적 책임의 주체라는 의미다. 장애를 이유로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구조는 장애인의 법적 주체성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치매 노인 열차 사고 사건에서 가족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하며, “동거만으로 포괄적 감독의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미국과 영국 역시 성인의 경우 부모 책임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적 돌봄 시스템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장애시민의 행위를 가족 통제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겠다는 법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 성인 발달장애 부모 돌봄 부담만 가중될 듯
이번 소송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선다. 부모에게 거액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질 경우, 이는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을 둔 모든 가족에게 잠재적 채무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선례가 될 수 있어 우려된다. 가족 중 돌봄 대상이 있는 경우 그 부담은 더욱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고, 가족은 성인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통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부담과 압박 속에 놓일 것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가 있는 성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와 책임의 주체다. 동시에 국가는 돌봄을 가족에게 전가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국내 판례가 확립해온 자기책임 원칙과 국제 인권 기준을 조화롭게 해석할 때, 답이 찾아질 것이다. 책임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 지원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가 움직일 때 비로소, 발달장애가 있는 이들의 가족들이 보호와 돌봄이라는 굴레가 아닌 사회의 책임 안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무필의 모두까기] 발달장애인 국가책임, 이제는 서비스 확대를 넘어야 한다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하라 ⓒ더인디고](https://theindigo.co.kr/wp-content/uploads/2025/12/res-150x15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