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작은 신발에 발을 구겨 넣는 정치는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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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재킷을 억지로 입혀지는 모습 /사진=챗지피티 편집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재킷을 억지로 입혀지는 모습 /사진=챗지피티 편집
  • 뇌병변장애인 논란이 던진 숙제, ‘장애인서비스법으로의 대전환

[더인디고=무필] 최근 뇌병변장애인을 발달장애인 범주에 넣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취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은 선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고, 작은 신발에 발을 구겨 넣는 게 과연 당사자를 위한 길일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이름표만 바꾼다고 삶이 바뀔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장애 정책은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에 따라 서비스를 나눠왔다. 하지만 현장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똑같은 뇌병변장애인이라도 누군가는 24시간 돌봄이, 누군가는 정교한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의 내용과 강도는 개인의 필요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 ‘발달장애인법’이 인지 및 행동 지원 위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뇌병변장애인이 이 울타리에 들어간다고 해서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적 관리나 보조공학 지원이 저절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맞지 않는 서비스를 억지로 이용하며 에너지만 낭비하는 범주 확대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포함’은 비명이자 신호탄이다

뇌병변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법의 문을 두드리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기존 장애인복지법이 철저히 실패했다는 증거다. 포괄적이라는 명분 아래 누구의 필요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낡은 법체계가 당사자들을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어느 법에 이름을 얹느냐는 방 배정 싸움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이번 논의는 낡고 좁은 이 집, 장애인복지법을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장애인서비스법이 필요하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장애를 유형으로 나누는 구시대적 사고를 버리고, 오직 지원 필요도를 기준으로 하는 장애인서비스법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국가가 장애인을 만날 때 “당신의 장애 이름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대신, “당신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필요합니까”라고 묻는 체계다. 의학적 진단이 아니라 일상의 장벽을 측정하고, 법의 이름이 아니라 필요한 서비스의 양에 따라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뇌병변이든, 발달장애든, 혹은 그 경계에 있는 중복장애든 상관없이 각자의 삶에 꼭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치의 용기, 이제는 응답해야 한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있는 법의 이름표를 조금 고쳐 다는 쉬운 길이 아니다. 구시대적인 지원 체계를 통째로 뜯어고치는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이 진짜 용기다.

범주 확대는 정치적으로 생색내기 쉽지만, 체계 전환은 고통스럽고 더디다. 하지만 언제까지 옷에 몸을 맞추는 비극을 방치할 수는 없다. 장애인 개개인의 삶에 맞는 옷을 국가가 직접 재단해야 한다. 결국 삶을 바꾸는 것은 화려한 이름표가 아니라, 그 사람의 하루를 지탱하는 정교한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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