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잊지 말자 ‘탈시설 로드맵’, 멈춘 약속을 다시 움직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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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폐쇄적 시설과 밝은 지역사회를 대비시킨 이미지에 ‘장애인권리보장법에 탈시설 명시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사진=챗지피티 편집
▲어두운 폐쇄적 시설과 밝은 지역사회를 대비시킨 이미지에 ‘장애인권리보장법에 탈시설 명시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사진=챗지피티 편집
  • 20218월의 선언, ‘보호에서 권리로의 이정표

[더인디고=무필 집필위원] 2021년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장애인 탈시설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국가가 시설 중심의 보호 체계를 끝내고 지역사회 자립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역사적인 공식 선언이었다. 2041년까지 단계적으로 시설 중심 체계를 해체하고 지역사회 자립을 완성하겠다는 이 장기 계획은,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장애인의 삶의 터전을 옮기고 권리를 회복시키겠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그 문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점차 잊혀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기조 변화와 탈시설의 실종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책 기조에는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정부는 ‘탈시설’이라는 명확한 용어 대신 ‘자립지원’과 ‘선택권 존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겉으로 보기엔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합리적인 수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로드맵이 지향하던 근본적인 구조 개혁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내년 시행을 앞둔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법’조차 핵심 단어인 ‘탈시설’을 삭제한 채 제정되면서, 로드맵이 공표했던 2041년의 청사진은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시범사업에 갇힌 약속, 예산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현재 탈시설 정책은 일부 지역의 ‘자립지원 시범사업’이라는 좁은 틀 안에 갇혀 있다. 시범사업은 본 사업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마치 이 사업 자체가 정책의 전부인 양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뼈아픈 지점은 시설 중심의 예산 구조다. 로드맵의 핵심은 시설 유지 예산을 지역사회 서비스 예산으로 단계적으로 이전하는 것이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대규모 시설을 유지하는 데 압도적인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정책의 수사는 화려해졌으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홀로 설 수 있게 돕는 주거지원과 24시간 돌봄 체계 구축은 여전히 ‘일부의 실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실행력 있는 구조 개혁으로 나아가야 할 때

우리가 다시 로드맵을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정책 기조의 변화가 ‘방향의 상실’로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과거의 선언을 되풀이하는 수준을 넘어, 현실의 한계를 돌파할 구체적인 실행력을 갖춰야 한다.

우선 법과 제도 안에서 ‘탈시설’이라는 용어와 가치를 온전하게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회 계류 중인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탈시설지원법’에 탈시설의 원칙을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 시설 거주 장애인의 지역사회 전환을 국가의 핵심 과제로 다시 명시하지 않는다면, 자립지원은 방향을 잃은 채 시설 내 처우 개선 수준에 머물고 말 것이다.

시설 유지에 편중된 예산 구조 역시 장애인의 개별 권리에 기반한 지원 체계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시설 운영비라는 이름으로 묶인 막대한 예산을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지원주택 공급과 활동지원 서비스 예산으로 재편하는 구체적인 이행표를 실천해야 한다. 예산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정책은 결국 구호에 그칠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프라 부족과 보호자의 불안을 이유로 자립을 미루는 관성에서 벗어나 국가가 직접 책임지는 실질적인 지원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최중증 장애인이나 무연고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의료와 돌봄이 결합된 공공 주도의 24시간 지원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시설 밖에는 답이 없다”는 비관적 논리를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실체적인 삶의 모델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약속을 이행하는 용기

탈시설은 정부의 선의가 아니라 당사자의 존엄한 권리에 관한 문제다. 국가가 한 번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약속한 방향을 ‘기조 변화’라는 명목 아래 조용히 잊히게 두는 것은 사회적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다. 잊지 말자, 탈시설 로드맵. 그것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향한 우리 사회의 엄중한 약속이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과거를 지우는 기술이 아니라, 그 약속을 끝까지 책임지고 이행하는 용기다. 멈춰 세워진 로드맵의 시계추를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할 때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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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y_jc@hanmail.net'
공자의 자절사 중 무필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필명 무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비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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