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장애인 이름표만 붙인, 무늬만 통합돌봄

161
▲장애인 이름표만 붙인, 무늬만 통합돌봄/이미지=제미나이
▲장애인 이름표만 붙인, 무늬만 통합돌봄/이미지=제미나이

[더인디고=무필 집필위원] 2026년 3월 27일,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전국 단위 통합돌봄이 본격화된다. 살던 곳에서 살아갈 권리,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의 삶을 보장하겠다는 이 정책은 분명 시대적 요구에 대한 국가의 응답이어야 한다.

하지만 시행을 코앞에 둔 지금,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이 정책은 통합이라는 이름과 달리, 노인 중심 시범사업의 외연에 장애인이라는 이름표만 덧붙인 채 급조된 구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숫자의 함정: 지자체당 2.7억 원으로 가능한 것은 없다
통합돌봄의 현실은 예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필요 재정은 최소 1조 4천억 원 규모. 그러나 정부가 편성한 예산은 914억 원에 불과하다. 이를 229개 시군구로 나누면 지자체당 평균 2.7억 원 수준이다.

이 금액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통합돌봄을 운영하는 척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전담 인력의 인건비와 기본 운영비만으로도 빠듯한 상황에서, 지역사회 기반 서비스 확충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결국 이 정책은 장애인에게 지역에서 살라고 말하면서도,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단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채 출발하는 셈이다.

개인별지원계획의 모순: 욕구는 묻고, 답은 정해져 있다
정부는 개인별지원계획을 통해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구조는 애초부터 치명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욕구는 묻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연계 가능한 서비스가 정부가 제시한 22개 항목으로 고정되어 있는 한, 아무리 정교하게 욕구를 파악해도 선택지는 변하지 않는다. 이는 맞춤형 지원이 아니라, 정해진 칸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행정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서비스의 내용이다. 고령 장애인을 주요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목록에는 장애아동 발달재활이나 영유아 보육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새로운 설계가 아니라 기존 사업의 단순 나열에 불과하다. 결국 이 정책은 당사자의 필요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답을 확인하는 요식 행위에 그친다.

진짜 통합은 목록이 아니라 유연성에서 시작된다
장애인의 삶은 행정의 칸막이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항상 목록 밖에서 발생한다. 활동지원사가 갑자기 그만두는 순간, 휠체어가 고장 나는 어느 날, 시설을 나온 직후 지역사회와 단절된 시간들. 이런 틈새를 해결하지 못하는 통합돌봄은 존재하더라도 쓸모없는 제도에 불과하다.

결국 통합돌봄의 성패는 미리 정해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가 발생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통합돌봄의 본질은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박제된 질문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유연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역동적인 질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돌봄 전시회로 끝낼 것인가, 권리로 만들 것인가
지금의 통합돌봄은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대로라면 이 정책은 제도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돌봄 전시회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전시회에는 숫자는 있지만 삶이 없고, 계획은 있지만 변화는 없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장애인의 생애주기를 반영한 실질적인 재정 투입
둘째, 지자체가 필요에 따라 예산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한 보장
셋째, 고정된 서비스 목록을 넘어 새로운 지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 설계

통합돌봄은 시혜가 아니라 권리다. 그리고 권리는 제공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3월 27일 시작될 이 정책이 이름뿐인 통합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의 전환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mercy_jc@hanmail.net'
공자의 자절사 중 무필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필명 무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비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Langu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