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한국형 사회법원’ 추진…장애인 사법접근권 넓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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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의 ‘한국형 사회법원’ 추진은 장애인이 사회보장 분쟁에서 겪어 온 정보 비대칭, 절차 장벽,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 특히 쉬운 판결문, 소송구조 확대, 사회보장 전담재판부 확대는 장애인의 사법접근권을 실질화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서울행정법원의 ‘한국형 사회법원’ 추진은 장애인이 사회보장 분쟁에서 겪어 온 정보 비대칭, 절차 장벽,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 특히 쉬운 판결문, 소송구조 확대, 사회보장 전담재판부 확대는 장애인의 사법접근권을 실질화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Chatgpt 이미지 편집
  • 사회보장 소송 등 장애인·임산부·노인·아동 사법접근권 강화
  • 쉬운 판결문 등 편의 제공…접근성 높이는 첫 시도

[더인디고] 서울행정법원이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한국형 사회법원’ 구축에 나선다. 사회보장 사건의 전문성을 높이고, 판결문은 쉬운 말로 바꾸며, 소송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그동안 멀고 어려웠던 법원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독일의 사회법원 모델을 국내 법체계에 맞게 적용하는 방안을 23일 전체 판사회의에서 논의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사회보장 전담재판부 확대·개편, 쉬운 판결문 도입, 소송구조 확대 등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이 변화가 주목되는 이유는 사회보장 소송이 장애인에게 단순한 법률 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연금, 활동지원, 각종 급여와 서비스, 차별과 배제에 관한 행정처분은 곧 삶의 조건과 직결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애인에게 재판은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절차였다. 복잡한 법률 용어, 높은 정보 장벽, 비용 부담, 의사소통의 제약은 재판을 권리구제 수단이 아니라 포기하게 만드는 장벽으로 작동해 왔다.

독일 사회법원은 연금·장애급여·실업급여 등 사회보장 분야 분쟁만을 전담하는 특수법원으로, 원고 친화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일반 소송처럼 당사자가 모든 주장과 증거를 스스로 감당하는 구조가 아니라, 법원이 사실관계 확인과 절차 진행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맡는다. 사회보장 분쟁의 상대방이 대부분 국가나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시민의 권리구제를 실질적으로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보장 전담재판부를 확대하고 있다. 기존에는 산업재해 사건 중심이었던 사회보장 전담재판부의 범위를 장애인·노인·임산부·아동 관련 사건 전반으로 넓히겠다는 것. 3월 현재 합의부 6곳과 단독 판사 7명이 사회보장 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이는 사회보장 사건을 일반 행정분쟁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법원이 제도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쉬운 판결문도입이다. 쉬운 판결문은 복잡한 법률 문장을 짧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바꾸고, 필요하면 그림이나 설명을 덧붙여 당사자가 판결 내용을 직접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장애인의 관점에서 이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다. 판결문은 재판의 결과와 이유를 담은 가장 핵심적인 문서이지만, 정작 당사자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에게 어떤 판단이 내려졌는지, 왜 그런 판단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면 재판은 당사자의 절차가 아니라 전문가만의 절차에 머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쉬운 판결문은 편의 제공이 아니라 사법접근권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특히 발달장애인, 청각장애인, 고령 장애인 등 정보 접근에서 더 큰 장벽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판결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곧 권리의 언어가 된다.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판단을 시민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려는 시도는 분명 긍정적이다.

소송구조 확대도 중요한 변화다. 서울행정법원은 장애 유형별 전문 변호사 풀을 구성하고, 장애 관련 사건은 접수 단계에서 원칙적으로 전액 소송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주거지 인근 변호사를 배정하는 ‘찾아가는 소송구조 서비스’도 도입할 계획이다. 장애인에게 권리침해는 자주 발생하지만,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재판 비용과 법률지원 접근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조치는 재판을 받을 수 있는 문턱 자체를 낮추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서울행정법원은 법원행정처에 소송구조 변호사 보수를 현행보다 4~5배 인상하는 예규 개정도 요청한 상태다. 전문성과 공공성을 갖춘 변호사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취지다. 법률구조공단과의 협력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에게 먼저 연락하는 보다 쉬운 변호사 연결 서비스도 추진 중이다.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단지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당사자가 실제로 그 문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와 연결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번 구상이 진정한 장애인 친화적 사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분명한 과제도 남아 있다. 우선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표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애인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다. 사회법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시혜적 접근이 아니라, 장애인이 국가를 상대로 동등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다툴 수 있도록 절차를 재설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또한 쉬운 판결문이 몇몇 상징적 사례로 그쳐서는 안 된다.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필요한 정보 접근 방식은 다르다. 쉬운 문장뿐 아니라 수어 통역, 점자와 음성자료, 전자문서 접근성, 의사소통 조력 등 다양한 방식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판결문만 쉽게 바뀌고 소장 접수, 기일 통지, 법정 진술, 증거 제출, 조정 절차는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제도의 실질적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역 격차 문제도 중요하다. 서울행정법원의 시도가 의미 있으려면 서울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국 법원 체계로 확산돼야 한다. 권리구제는 지역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서울에 사는 장애인만 더 쉬운 재판,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불평등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 당사자의 참여다. 법원이 장애인을 위한 제도를 설계하면서 정작 장애인의 경험과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제도는 다시 공급자 중심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쉬운 판결문이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 어떤 지원이 실제로 필요한지, 재판 과정에서 무엇이 장벽이 되는지는 당사자의 목소리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한국형 사회법원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제도 설계와 평가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단체의 참여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시도는 분명 반갑다. 법원이 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기존의 일반 행정소송 틀로만 다룰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낮은 문턱의 절차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럼에도 진짜 평가는 지금부터라는 장애계의 평가도 있다. 쉬운 판결문, 전문 재판부, 확대된 소송구조가 실제로 장애인의 권리구제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서울을 넘어 사법체계 전반의 표준이 되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법원을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한국형 사회법원이 결국 증명해야 할 과제다.

한편 한국장애인인권포럼 부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에서는 사법지원 과정에서의 장애인 접근성을 올해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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