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능 중복이 부른 공백, 해법은 전문적 분업
[더인디고=무필 집필위원]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학대 대응 체계는 하나의 목표를 향하면서도 서로 다른 설계에 기반한 이중 체계로 작동하고 있다.
모든 장애인을 포괄하는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그리고 발달장애인의 특수한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발달장애인법」상의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그렇다.
엇갈린 설계도: 협력이 아닌 ‘중첩’의 구조
문제는 이 두 체계가 ‘협력’이 아니라 ‘중첩’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장애인복지법」은 이미 학대 현장조사와 보호조치에 대한 국가적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인법」에 모호하게 남아 있는 ‘보호조치’ 규정은 현장에서 이중적인 판단과 역할 혼선을 낳고 있다. 긴급한 순간, 행정력은 분산되고 책임은 흐려진다.
6,031건 vs 355명: 데이터가 드러낸 구조적 한계
이 구조적 비효율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의 ‘2024 장애인 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학대 신고는 6,031건에 달하며, 이 중 발달장애인 피해자는 1,030명으로 7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실제 대응의 밀도는 전혀 다르다. 국회 서미화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직접 지원한 피해자는 355명에 불과하다. 6천 건이 넘는 신고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이는 단순한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초기 대응 기능이 중복되면서 행정력이 효과적으로 집중되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피해자이자 가해자: 발달장애인이 놓인 이중의 현실
오히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지표다. 같은 해 지원센터의 가해자 관련 지원은 569건으로 피해자 지원을 크게 상회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해자’는 보호자나 시설 종사자가 아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사법적 가해자로 분류된 경우에 대한 지원이다. 이 수치는 중요한 현실을 드러낸다. 발달장애인은 학대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적절한 지원이 부재할 경우 사건의 ‘행위자’로도 위치 지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처벌이나 분리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의사소통의 한계, 환경적 스트레스, 지원체계의 공백이 결합될 때, 발달장애인은 형사적 책임의 영역으로 밀려난다. 결국 우리는 보호하지 못한 사람을, 다른 이름의 ‘가해자’로 다시 만나게 된다.
해답은 분명하다: 기능이 아니라 역할을 나눠야 한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두 기관이 같은 일을 나눠 갖는 구조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강점을 살려 역할을 재편할 것인가.
해답은 ‘전문적 분업’이다. 학대 조사와 긴급 보호는 「장애인복지법」 체계에 따라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전담해야 한다. 반면 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사건 이후의 삶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발달장애인법」 제17조 개정이 필요하다. 센터의 역할을 물리적 보호조치에서 분리하고, 권익옹호기관으로의 신속한 의뢰, 의사소통 지원, 개인별 지원계획 수립, 지역사회 복귀 지원 등 발달장애 특성에 기반한 전문적 사후 개입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사건 이후의 삶까지 책임지는 체계로
더 나아가 학대 재발 방지를 위한 환경 개선 기능을 법제화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사법적 가해자로 이어지는 경로를 끊기 위해서는, 사건 이후의 개입이 ‘관리’가 아니라 ‘재구성’이어야 한다. 가해자 상담, 가족 교육, 생활환경 조정과 같은 전문적 개입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같은 사건을 반복해서 마주하게 될 것이다.
6,031건의 신고는 이미 충분한 경고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제도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다.
엇갈린 설계도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정비가 아니다. 그것은 발달장애인의 삶을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으로 회복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기능의 중복이 아니라 역할의 분명한 분업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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