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영상진술 인정한 헌재…‘사법접근권’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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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만으로도 증거능력을 인정한 구 성폭력처벌특례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장애인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정 출석 여부를 넘어서 의사소통 조력과 진술 지원 체계를 갖춘 사법절차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과제를 함께 남겼다.
▲헌법재판소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 진술만으로도 증거능력을 인정한 구 성폭력처벌특례법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장애인 피해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법정 출석 여부를 넘어서 의사소통 조력과 진술 지원 체계를 갖춘 사법절차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과제를 함께 남겼다. Ⓒ Chatgpt 이미지 편집
  • 영상진술 증거 인정, 헌재는 왜 합헌이라 봤나
  • 피고인 방어권과 장애인 피해자 보호, 재판부 의견 팽팽
  • 법정 출석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진술 지원 체계
  • 장애인 피해자의 권리를 위한 사법절차 재설계 필요

[더인디고] 지난 26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영상 진술만으로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구(舊) 성폭력처벌특례법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4인(김형두·조한창·정계선·마은혁)은 합헌, 5인(김상환·정정미·정형식·김복형·오영준)은 위헌 의견을 냈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이르지 못하면서 해당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

영상진술 증거 인정, 헌재는 왜 합헌이라 봤나

문제가 된 조항은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수사기관에서 촬영한 영상 진술이 적법하게 작성된 것으로 인정되면 법정 증인신문 없이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가 직접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영상 진술만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헌재에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이 조항이 장애인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과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반대신문이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절차이기는 하지만, 장애인 피해자에게 이를 일률적으로 요구할 경우 기억 왜곡이나 극도의 위축을 초래해 오히려 진술의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봤다. 또한 영상 진술은 단순한 진술 내용만이 아니라 표정, 말투, 반응 등 비언어적 요소까지 함께 기록한다는 점에서 사후 검토가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법원이 재량으로 증인신문을 실시할 수도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피고인 방어권과 장애인 피해자 보호, 재판부 의견 팽팽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영상 진술이 수사기관의 질문 방식과 조사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전문증거라는 점을 지적했다. 피해자의 일방적 진술과 수사기관의 질문으로 구성된 영상만으로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를 삼는 것은 오류 가능성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반대신문권이 단순한 절차적 권리가 아니라, 피고인이 진술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해 다툴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형사절차의 공정성과 정당성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라고 봤다. 따라서 이를 전면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헌재는 지난 2021년 같은 조항 가운데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신문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후 2023년 10월 개정법 시행으로 해당 조항은 삭제됐고, 반대신문권 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이 바뀌었다. 다만 개정 전 법률은 그 이전에 기소된 사건들에는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법정 출석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진술 지원 체계

이번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법정에 직접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규정 자체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왜곡 없이, 위축되지 않고,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진술할 수 있는 절차적 환경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가에 있다. 장애인 피해자의 진술은 종종 신빙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소통 방식과 조사 환경의 문제로 인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 형사사법 체계는 오랫동안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한 진술 구조를 중심에 두고, 장애 특성에 맞는 지원 체계를 예외적으로 다뤄왔다. 이 구조 안에서는 장애인 피해자가 법정에 서면 과도한 부담을 떠안고, 서지 않으면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불거지는 이중의 한계가 반복되었다.

장애인 피해자의 권리를 위한 사법절차 재설계 필요

이번 헌재 결정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애인 피해자의 권리는 형사절차의 예외적 배려가 아니라, 사법정의가 누구를 중심에 두고 설계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권은 피해 사실을 말할 기회를 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진술이 제도 안에서 온전히 전달되고, 공정하게 평가되며, 다시는 상처가 반복되지 않도록 절차 전체를 재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헌재 결정 이후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장애인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으면서도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사법접근권 중심의 제도 설계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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