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여자장애인 화장실로 가세요

98
▲남자장애인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용무가 급하신 분은 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 ©이민호
▲남자장애인화장실 문에 붙어 있는 '용무가 급하신 분은 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해달라'는 안내문 ©이민호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명덕역에서 환승을 하기 위해 승강기를 탔다. 위로 올라가던 중, 아래에서 호출 신호가 올라왔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나는 곧장 남자장애인 화장실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자동문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한 번 더 눌렀다.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한 발짝 물러서서 문을 바라봤다.

‘시설물을 점검하고 있으니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용무가 급하신 분은 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DTRO대구도시철도공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다른 역사로 이동할 수 없을 정도로 급했기에 여자장애인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입구 앞에서 바퀴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장애인 화장실이 별도 공간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흔히 ‘일반 화장실’이라고 부르는 곳 안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들어가려면 여자들과 마주칠 위험이 있다는 소리인데, 부끄러움보다 생리적 욕구가 더 강했기에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인기척이 없었다. 물속에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여자장애인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뒤 귓속에서 ‘할렐루야’가 울려 퍼졌다. 볼일을 다 보자 문밖에서는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방송과 사람들의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숨을 들이마시고 자동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으악, 문이 열리자마자 비장애인 여자분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였으나, 경멸과 분노의 눈빛이 내 입을 막아버렸다.

여자분은 “재수없어”라는 말을 남긴 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고의가 아니라 공공기관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변태’ 취급을 받아서 너무 억울했다. 고구마 100개를 한 번에 삼킨 것 같았다. 대합실로 나오자 수많은 사람의 복잡미묘한 눈빛이 나에게 날아와 꽂혔다.

애석하게도 대합실에는 쥐구멍이 없어서 승강장으로 줄행랑을 쳤다. 올라가자마자 열차가 들어와 거기로 몸을 던졌다. 멀어져가는 명덕역을 바라보며, 깊은 물 속에서 올라온 잠수부처럼 숨을 골랐다.

숨을 고르고, 일반 화장실이 고장 났을 때 다른 성별의 화장실로 가라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는지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백이면 백 ‘이용 불가’라는 문구만 남아 있다.

남자와 여자, 단 2개로 구분된 장애인 화장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고장났을 때 아무런 대안 없이 다른 성별의 공간을 이용하라고 안내하는 것은 장애인을 성 정체성이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인데, 이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것은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 성소수자에게도 높은 장벽이 된다. 외형에 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화장실 이용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

또한, 장애인, 노인, 영유아 등을 동반해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 역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번 타인의 시선을 감당해야만 한다. 결국, 지금의 화장실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방식은 존재하고,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 이 문제는 결코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성중립 화장실을 확대하고 있고, 개빈 뉴섬 주지사는 공립학교에 최소 1개의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백악관 역시 이미 성중립 화장실을 도입했다. 국내에서도 성공회대학교는 ‘모두의 화장실’을 통해 장애인, 성소수자, 영유아 동반자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날, 명덕역에서 나는 단지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여자장애인 화장실을 이용하라’는 안내는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책임은 부끄러움과 오해, 낙인의 형태로 돌아왔다.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급한 순간에도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공간은 왜 아직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양해’를 구하는 안내문이 아니라, 누구나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이든, 성소수자든, 돌봄을 동반한 사람이든, 그저 한 사람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그날 나는 도망치듯 열차에 올랐다. 이제는 누구도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 답을 우리가 만들어야 할 때다. 그 최소한의 존엄은 선택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시는 미룰 수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Langu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