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싼맛’에 맡긴 돌봄에 존엄한 노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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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을 돌보고 있다. /사진=KBS 뉴스 캡처
▲돌봄노동자가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을 돌보고 있다. /사진=KBS 뉴스 캡처

[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지난 3월 27일, ‘지역사회 통합돌봄지원법’이 시행됐다. 살던 곳에서 나이 들고,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지역사회 계속 거주(Aging in Place, AIP)’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내세워 온 목표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다. 그 목표를 떠받치는 현실이다.

“누가 돌봄을 하고 있으며, 그 노동은 제대로 대우받고 있는가.”

좋은 일자리 없는 돌봄은 존재할 수 없다. 돌봄은 단순 서비스가 아니라, 관계와 숙련, 그리고 책임이 축적되는 노동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돌봄은 여전히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비용을 줄여야 하는 영역’으로 취급되고, 현장은 ‘싼맛’에 의존해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는 이미 드러나고 있다.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은 높은 이직률로 이어지고, 이용자는 자신의 가장 사적인 영역을 맡는 사람이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사의 잦은 교체는 적응의 어려움을 키우고 가족에게까지 부담을 전가한다. 숙련은 축적되지 못하고, 돌봄은 관계가 아니라 ‘시간 안에 끝내야 할 일’로 전락한다. 노동이 무너진 자리에서 존엄한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요구다.

최근 정부와 노동계가 참여하는 ‘노·정 협의체’가 출범했다. 의미 없는 변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과로 부르기에는 이르다. 이 협의체는 오히려 그동안 민간위탁 뒤에 가려져 있던 정부의 책임이 더 이상 숨겨지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돌봄 노동의 임금과 조건이 ‘수가’와 ‘지침’으로 결정되는 한, 정부는 이미 가장 큰 사용자이자 결정권자다.

이제 통합돌봄은 선언이 아니라 시험대에 올랐다. ‘무늬만 통합’에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첫째, 돌봄노동의 가치를 말이 아니라 예산으로 증명해야 한다. 낮은 수가 구조를 유지한 채 질 높은 돌봄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기만에 가깝다.
둘째, 민간위탁에 기대온 책임 회피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국가와 지자체가 직접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 한, 돌봄의 안정성은 확보될 수 없다.
셋째, 돌봄노동을 비용이 아닌 필수 공공서비스로 재정의해야 한다. 노동조건을 정책의 주변부에 두는 한, 어떤 제도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넷째, 이용자의 선택권과 통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관계를 선택할 수 없는 돌봄은 권리가 아니라 배정에 가깝다.

돌봄은 공동체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떠받치는 노동이다. 그 노동을 ‘싼값’에 맡긴 사회에서 존엄한 노후를 기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좋은 일자리가 질 높은 돌봄을 만든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증명해야 할 기준이다.

통합돌봄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남은 것은 방향이 아니라 결단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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