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누구를 위한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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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여진 각본, 예약된 결말/ 이미지=Gemini
▲짜여진 각본, 예약된 결말/ 이미지=Gemini

[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심의인가, 준비된 발표인가

복지부가 공개한 ‘제28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 안건 자료를 보면, 이 위원회의 무게는 유난히 차갑다. 백 페이지가 넘는 서류에는 시행계획과 인권 대책이 빼곡히 담겨 있지만, 정작 회의를 불과 사흘 앞두고 사전 공유된 자료는 30페이지 남짓에 그쳤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충분한 검토와 토론이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구조 속에서 위원회는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라기보다, 이미 완성된 무대 위에서 정해진 대사를 반복하는 연극에 가까워진다.

더 큰 문제는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책의 방향과 결과가 사실상 확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회의실 안에서 어떤 문제 제기가 나오든, 정부 발표는 이미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다. 전체 안건의 일부만 사전 공유해 놓고, 충분한 논의를 거친 것처럼 포장하는 절차 속에서 위원들은 의도치 않게 정부가 짜놓은 각본의 ‘배우’가 된다. 문제는 이 연극이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토 이전에 결론이 정해지고, 심의 과정은 이를 정당화하는 절차로 기능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책임은 흩어지고, 정책은 남지 않는다

안건에 담긴 내용만 보면 방향은 그럴듯하다. 저상버스 도입 확대,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권 강화, 중증장애인 생산품 구매 촉진 등 익숙하지만 필요한 과제들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 약속들이 이행되지 않을 때 돌아오는 답변 역시 익숙하다.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재정 여건상 어렵다”는 말들이다. 입법의 책임은 국회로, 재정의 책임은 예산 당국으로 흩어지고, 정작 정책을 설계한 부처의 책임은 흐려진다. 그 사이에서 정책의 실효성은 약해지고, 당사자의 절박함은 다시 뒤로 밀린다.

이제는 ‘왜 안 되는가’가 아니라 ‘왜 바뀌지 않는가’를 물어야 한다. 형식적 심의를 거쳐 발표만을 남기는 구조가 계속되는 한, 위원회는 정책을 개선하는 장이 아니라 책임을 분산하는 장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정책은 홍보나 면피의 수단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실제로 바꾸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이제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상설적인 장애인 정책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일 년에 몇 차례 열리는 회의로는 이행 점검도, 책임 있는 조정도 어렵다. 정책의 추진 과정 전반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사전 자료 공개와 숙의 기간을 제도화하며, 예산과 입법의 공백까지 실질적으로 연결해낼 수 있는 구조가 요구된다. 공개성과 책임성을 전제로 한 논의 속에서 정책은 비로소 현실의 힘을 갖는다.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채 가결되는 수많은 계획들. 이 문서들이 과연 누군가의 삶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지 묻게 된다. 반복되는 형식 속에서 남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실행되지 않는 약속에 대한 피로감이다.

이제는 ‘왜 안 되는가’가 아니라 ‘왜 바뀌지 않는가’를 물어야 한다. 결론이 정해진 회의와 책임이 분산되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로는 어떤 계획도 실현되기 어렵다.

같은 장면이 재방송처럼 반복되는 이 연극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각본 없는 ‘라이브’로 무대를 바꿀 것인지 선택은 이미 충분히 미뤄졌다.

[더인디고 THE INDIGO]

mercy_jc@hanmail.net'
공자의 자절사 중 무필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필명 무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비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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