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작은 화분에 심긴 식물은 어느 순간 성장을 멈춘다. 물을 더 주고 비료를 보태도 소용이 없다. 뿌리가 이미 화분 안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는 더 이상 뻗어 나갈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정원사는 화분을 옮기는 동시에 가지를 친다. 이미 말라버린 가지, 서로 얽혀 햇빛을 가리는 가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식물은 새로운 공간에서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성장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장애인복지가 서 있는 자리가 그렇다.
그동안 우리는 장애인복지를 꾸준히 확장해왔다고 말해왔다. 예산은 늘었고, 서비스도 다양해졌다. 여러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지며 외형은 분명 커졌다. 그러나 그 안에서 장애인의 삶이 얼마나 넓어졌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여전히 많은 제도는 ‘보호’와 ‘관리’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서비스는 늘어났지만, 삶의 선택지는 충분히 확장되지 않았다. 이제는 분명해졌다. 지금의 장애인복지는 화분이 작다. 그래서 더 넓은 공간으로의 전환, 즉 제도의 근본적인 확장이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법과 제도를 ‘더 큰 화분’으로 기대한다. 얼마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권리보장법 역시 그러한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혹은 권리라는 언어를 더 많이 담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새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법이 여전히 기존의 서비스 체계와 전달 구조를 전제로 하고, 장애인의 삶을 ‘지원의 대상’으로만 두는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큰 화분이 아니라 모양만 바뀐 같은 화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법의 명칭이 아니라, 그 법이 실제로 얼마나 삶의 경계를 넓히는가이다.
권리를 선언하는 것을 넘어, 선택과 결정의 권한을 개인에게 실질적으로 돌려주는 구조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 화분을 바꿨다고 믿으면서도 같은 자리에서 성장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구조 안에 과연 그대로 두어야 할 것들만 있는가에 대해 판단이 필요하다.
중복되고 비효율적인 전달체계, 특정 집단이나 조직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 장애인의 선택권보다 공급자의 편의에 맞춰진 서비스 방식. 이러한 요소들은 그 자체로 성장의 방향을 왜곡시켜왔다.
이것들은 단순히 보완할 대상이 아니라, 과감히 정리해야 할 가지들이다. 화분을 바꾸는 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지치기 없이 이루어진 확장은 또 다른 왜곡과 비대함을 낳을 뿐이다.
장애인복지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삶의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의 확장, 그리고 그 확장을 가로막거나 왜곡해온 구조에 대한 정리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 누구와 관계 맺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할 것인지는 더 이상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가 아니라, 개인의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기존의 질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확장은 용기를, 가지치기는 결단을 요구한다.
지금 우리의 장애인복지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시점에 서 있다.
화분을 바꾸고, 가지를 쳐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다시 성장할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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