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박관찬 기자]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열띠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 한 후보자의 장애인정책 공약을 두고 많은 장애인들이 원성을 쏟아냈다. 그의 장애인정책 공약 중 ‘장애인 시설 확충’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색동원 사건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탈시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장애계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가 되고 있다.
해당 후보자가 장애인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진짜’ 이유는 본인만 알 것이다. 하지만 장애계의 흐름과 전혀 다른 내용의 공약을 내건 것으로 말미암아 두 가지를 추측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장애에 대한 무지함이고, 두 번째는 후보자로서 지역사회의 당연한 구성원인 장애인의 삶에 대해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한마디로 첫 번째도 장애에 대한 무지, 두 번째도 장애 대한 무지다.
장애에 대한 무지는, 아마도 ‘장애인=집=시설’이라는 비장애인우월주의와 장애인 동정론에 기반한 사고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인권감수성이나 장애감수성이 발전하고 있는 것과 별개로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이 공연 관람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 국회의원이 장애비하발언을 하고도 해당 내용이 장애인을 비하한 게 아니라고 하는 것, 영화에서 장애를 잘못 표현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후보자가 장애인의 날에 발표한 장애인정책 공약이 ‘장애인시설 확충’이 아니라 ‘장애인시설을 줄이고 장애인의 자립생활지원정책 확충’으로 나왔다면 어땠을까. 탈시설을 염원하는 장애인들에게 환호받을 수도 있었고, 지금처럼 많은 장애인들에게 비난받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 기자의 개인 SNS에 청각장애인의 공연 관람에 대한 글을 게재한 적이 있다. 평소 게시물에는 온라인상에서 ‘친구’인 사람들만 공감과 댓글을 남기곤 했는데, 왠일인지 해당 게시물에는 일면식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기자의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겼다. 그들의 댓글은 하나같이 청각장애인의 공연 관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청각장애인이 공연을 관람하냐면서, 청각장애인에게 공연보러 가자는 사람은 ‘병신’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그들의 댓글을 보면 나름대로 그들의 입장에서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걸 알 수 있다. 서두에서 소개한 후보자도 장애인은 시설에 있어야 안전하고, 그만큼 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장애인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더라도, 결국 결론은 비장애인우월주의와 장애인 동정론이다.
이런 이슈를 접할 때마다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접근은 어떤 방향이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안내견은 식당에 동반 입장이 안 된다거나, 청각장애인은 공연 관람이 어렵다거나, 장애인은 집이나 시설에 있어야 된다는 장애의 표면적인 부분보다는 ‘본질’에 좀 더 집중하면 어떨까.
‘장애가 있으면 못한다’는 ‘장애’에 집중한 접근보다 ‘사람’ 자체로 접근하는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면 좋겠다. 그럼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고, 장애에 대해서는 부수적이나 정체성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며 시설이 아닌 집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지, 청각장애로 인한 공연 관람은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볼 여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운동하고 투쟁하여 문제점을 알리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을 ‘장애’보다 ‘사람’으로 먼저 접근하면서 장애인이 동정의 대상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길 염원한다.
[더인디고 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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