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학교로 출근하는 길에서 종종 동료 선생님들을 만난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만나자마자 선생님들은 어김없이 한쪽 팔을 나에게 내어주신다. 먼 길을 갈 때도 가까운 길을 걸을 때도 내어주신 팔을 붙잡고 함께 다니는데, 매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주변 상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쉴 새 없이 설명해 주신다. 덕분에 나는 볼 수는 없지만 학교 주변에 어떤 가게가 새로 생겼는지 어떤 건물의 외벽 색이 바뀌었는지 비 오는 날 북한산의 풍경은 어떤지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
“여기는 길이 너무 울퉁불퉁해서 불편하시죠?”
오늘 출근길을 함께 한 선생님은 학교 진입로 경사로의 바닥이 고르지 않은 것을 알려주신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씩 시각장애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선생님들은 작은 불편이라도 학생들이나 동료들에게 혹시라도 위험이나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습관처럼 하신다.
“그러게요. 아이들에게 불편할 수도 있겠네요.”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내게 그 길이 불편함으로 느껴진 적은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짧은 길이기도 했고 깊은 웅덩이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히려 내겐 학교에 다 왔다는 이정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평탄한 길이 대체로 좋긴 한데 때때로 너무 길이 다 밋밋한 것보다는 가끔씩 울퉁불퉁한 길이 있는 게 더 도움이 되기도 해요.”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고르지 않은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랬다.
집으로 가거나 학교에 출근하거나 자주 가는 보행로에서 내게 얼마만큼 길을 왔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평탄한 길보다는 갑자기 나타나는 급한 경사로나 푹 꺼진 작은 웅덩이이거나 울퉁불퉁 패이거나 튀어나온 길이었다. 모든 길이 반듯하고 매끄럽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만 내게는 깨어지고 틀어진 길도 그 이상의 고마운 의미가 있었다.
높이가 다른 하나의 계단은 내가 정확히 목적한 지하철역에 내렸다는 확신이 되고, 끝부분이 틀어진 점자 블록도 내가 올바로 가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길 한가운데에 튀어나온 전봇대나 가로수마저도 약간의 불편을 주지만 내게는 길 안내판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특별한 어려움 없이 평안하기를 바라지만 우리 삶이 늘 그렇지만은 않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고 오늘만 같은 내일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이어지는 날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고 그렇게 삶이 이어진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무료하고 지겹다고 느낄 것이다. 신나고 기분 좋은 날들만 있기를 꿈꿀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느꼈던 음식도 반복해서 먹으면 그 감흥이 줄어드는 것처럼 좋은 날도 짜릿한 기억도, 반복되면 어김없이 밋밋한 기억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소중하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부딪히고 다투는 시행착오의 시간이 필요했고 건강이 중요하다고 뼈저리게 느낀 날은 심하게 앓아누운 어떤 날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날은 시험을 심하게 망친 날이었고 술은 적당히 먹는 게 좋겠다고 다짐한 날은 만취와 실수를 경험한 날이었다.
우리가 사는 수많은 날은 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두 달랐기에 우리는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산다. 오늘 내가 무사히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울퉁불퉁한 경사로 덕분이었고 오늘을 그나마 사람처럼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깨어지고 다친 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가는 길 가운데 나의 안내자가 되어 준 불편함과 나도 모르는 새 나를 어른으로 이끌어준, 아프고 어려웠던 날들에 감사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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