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엄마가 유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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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T)과 감성(F)의 공존과 다름에 대한 포용/ 이미지=Gemini
▲이성(T)과 감성(F)의 공존과 다름에 대한 포용/ 이미지=Gemini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MBTI 심리검사에서 T와 F를 확실하게 나눠준다는 동화책 읽기에 도전했다. 나는 스스로를 후천적 F라고 주장하지만 수학 전공자인 나를 F로 인정해 주는 지인들은 별로 없었다.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이성과 논리에 맞선 감성과 인간애를 통한 설득의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나이지만 사람들은 그런 생각마저도 철저히 계산된 T의 사고라고 말했다. 이번 기회로 나의 감성적 매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심으로 책 읽기에 도전했지만 울어야 F라는 미션을 달성할 자신은 없었다.

아이들 읽으라고 써 놓은 몇 줄의 글자들로 다 큰 남자 어른이 운다는 것은 적어도 내겐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F성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짜내어 울 수도 있겠지만 연기자 아닌 내가 그런 방법이 가능할 리도 없었다. 결국 나는 이번 도전이 나의 F 성향을 강제로 부정하려는 이들의 지능적 설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읽기는 읽되, 울지 않더라도 F가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엄마가 차에 치여 유령이 되었습니다.”

점자로 변환된 첫 문장을 자신 있게 읽었다. 그런데 상황은 나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입술과 볼의 살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 꿀떡거리고 있었고 주책스러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두 문장도 세 문장도 아닌 단 한 문장으로 나는 ‘꺼이꺼이’라는 의성어가 어울릴 정도로 오열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건 다섯 살배기 건이입니다.”라는 엄마 유령의 말은 물론이고 “꼬끼오!” 하며 어떤 소리라도 아들의 귀에 닿고 싶어 하는 엄마의 마음들은 내 눈물샘의 수문을 통째로 열어버리고 말았다.

도전이었기에 끝까지 읽어 내려가긴 했지만 한 줄 한 줄이 마지막 문장이었기를 바랐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파악도 기억도 되지 않았다.

영상을 시청해 준 500만 명의 시청자들로 인해 난 단숨에 찐 F로 인정받았다. 수천 개의 댓글 중엔 나의 상태를 우울증 초기나 남성 갱년기로 걱정해 주는 글들이 적지 않았지만 다행히 나의 다른 장면들이 꽤나 활기차고 밝은 것으로 보아 그건 특별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 나의 머리와 마음을 가득 채우는 아내와 아기에 대한 생각들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터질 만큼 말랑말랑해져 있는 것이 원인이었다. 나를 구성하는 어떤 부분들은 차갑고 냉정할 정도의 T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지만 적어도 나의 가족에 대한 부분은 한 점의 예외도 없는 F의 감성임이 틀림없다.

요즘의 나는 어떤 영상이라도 아기 혹은 아기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어하는 것은 되도록 보지 않으려고 한다. 어쩌면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볼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내가 슬픈 동화책을 읽고 우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의 평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함께 울었다는 쪽과 왜 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크게 웃었다는 쪽이었다. 울면서 웃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너무 웃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는 것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감정에 속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혹시나 하여 책까지 사 봤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는 시청자들은 나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심했다. 나 또한 직접 내가 도전해 보지 않았다면 그런 반응이었을지 모르겠다. 함께 울었다는 사람들은 영상을 반복해서 봐도 볼 때마다 눈물이 터진다고 했다. 다른 동화책을 보고도 울었다고 했고 아기 낳은 사람들은 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우는 이들은 웃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웃는 사람들은 그게 정말 울 일이나 되는지 의아해했다. 장난처럼 시작한 도전이었는데 극단적으로 갈리는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짧은 글이나 영상을 보고 갖는 마음가짐은 정반대를 향하고 있었다. 이성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감성이 언제나 따뜻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에 대해 우리는 전혀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 스스로 꽤 넓은 이해심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이의 융통성도 본인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제한적 아량일 수 있다.

나는 가족에 대해서만큼은 극단적 감성주의자이지만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는 다른 가족들 또한 가정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타협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냉철한 이성을 보이지만 그에 반하는 인간미가 항상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맞닥뜨린 하나하나의 사건 앞에서 나의 생각이나 방법과 다른 이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 적지 않았음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상을 보고 펑펑 울었던 이와 깔깔거리며 웃었던 이는 옆집에 사는 이웃일 수도 있고 매일 만나는 동료나 친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주 만나고 적지 않은 순간 잘 어울려 살고 있었지만 오늘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어떤 면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이도 스스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어떤 생각도 항상 절대적 진리가 될 수는 없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마주한 것은 그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틀렸다기보다는 나의 이해의 품이 다름을 포용하기에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동화책 한 권으로 펑펑 울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든든하다. 차가운 이성을 가진 이들의 삶이 팍팍할 수 있겠지만 어떤 계산도 없이 함께 울어 주고 웃어 줄 수 있는 따뜻한 이들이 때때로 그들에게 위로와 쉼이 될 것이다.

많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줄 수 있는 가장 필요한 다름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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