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개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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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도시의 광장에서 전동휠체어와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군중의 환호 속에 영웅처럼 추앙받고 있다. 뒤편 현수막에는 “인류의 에너지, 우리의 영웅!”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으며,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림=Nano Banana 2 편집
▲미래 도시의 광장에서 전동휠체어와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군중의 환호 속에 영웅처럼 추앙받고 있다. 뒤편 현수막에는 “인류의 에너지, 우리의 영웅!”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으며,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림=Nano Banana 2 편집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서기 5만 년, 지구 자원이 고갈되어 인류는 멸망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기적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먼 우주도, 심해도 아닌 인간의 몸 안에 강력한 에너지 물질을 발견한 것, 그리고 그 물질이 오직 장애인의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사회에서 오랫동안 차별받고, 배제당하고, 보이지 않던 존재로 취급되던 장애인들이 순식간에 인류의 ‘구원자’로 호명되었다. 뉴스는 그들을 영웅이라 칭했고, 사람들은 감사와 존경의 말을 쏟아냈다. 길가는 시민들이 모든 장애인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승강기 앞이건 놀이공원이건 장애인들은 줄을 서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가장 먼저 안내를 받고 가장 먼저 들어갔다. 지구상 모든 건물과 교통수단은 완벽하게 접근 가능해졌다. 극지와 오지에 갈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 헬리콥터가 24시간 준비되어 있었기에 물리적 장벽 따위는 사라졌다.

노동할 권리는 더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학교와 기업체가 장애인을 ‘모셔가기 위해’ 혈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은 오롯이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입맛대로 선택만 하면 되었다. 집단거주 시설은 폐쇄되었고 어디에 살지, 무엇을 할지, 누구와 살지 그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교통수단을 10분 이상 기다리게 하면 책임자는 그 즉시 구속되었다. 그동안 제한되었던 권리들이 밀물처럼 들어오게 된 것이다. 올림픽의 순서도 전복되었다. 비장애인 올림픽보다 장애인 올림픽을 먼저 개최하게 되었다. 보치아는 월드컵 수준의 세계적 인기를 끌었고, 선수들의 연봉도 몇조 원에 이르렀다. 보치아 월드컵이 열리는 날이면 전 세계 모든 광장에 발 디딜 틈이 없었고, TV에서는 트는 채널마다 보치아 경기가 중계되었다. 지난 역사에서 행해졌던 장애인 차별과 배제의 역사에 대해서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과 모든 정당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리고 ‘장애 해방 및 시민권 확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지난 몇천 년 몇만 년 동안 장애인들이 겪었던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기에 이른다.

수백 년간 장애인들은 일 년의 단 하루가 아닌 365일, 매일매일 권리를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그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지구 대지진이 가시화되자 공간 초월 항법 기술을 개발해 이주 가능한 우주를 찾아 헤매었고, 마침내 5,000억 광년 떨어진 누비아 은하계에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지닌 사로 행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밝혀진 사실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곳에는 장애인의 몸속에 존재하던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물질이 대규모로 매장되어 있었다. 그 순간, 장애인은 더 ‘필요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지구 연합은 사로 행성으로의 이주를 결심했고, 그 결정은 곧바로 장애인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장애인의 삶은 다시 수백 년 전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었던 시대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장애 해방 및 시민권 확보에 관한 법률’은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파기되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과 모든 정당 관계자는 장애인들이 그동안 너무 많은 것을 누렸다며 ‘권리의 정상화’를 선언했다. 장애인 올림픽은 뒤로 밀려났고, TV에서는 생중계를 중단해 올림픽이 진행되는 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노동할 권리는 더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다. 왜냐하면, 정책적으로 모든 장애인을 노동 현장에서 쫓아내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와 기업체는 한목소리로 장애인 고용 금지 선언을 했다. 집단거주 시설은 우후죽순 새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머나먼 과거의 내무부 훈령을 부활시켜 장애인들을 시설에 재수용했다. 어디에 살지, 무엇을 할지, 누구와 살지조차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한때 전 세계를 누비던 베리어프리 헬리콥터들은 짐을 나르는 화물기로 개조되었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같은 교통수단들은 ‘우주선 개발소재’로 차출되었다. 건물 앞에 설치된 경사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가는 시민들의 표정은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더는 누구도 미소를 건네지 않았고, 누구도 먼저 길을 내어주지 않았다. 한때 ‘구원자’로 불리던 존재들은 다시 차별화 혐오의 존재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지진의 전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장애인들을 위해 24시간 운행되던 배리어프리 헬리콥터들은 이제 ‘누크호’ 탑승객들의 골동품과 사치품을 실어 나르는 화물기가 되어 머리 위를 오갔다. 지면이 일렁이고 바다가 끓어오르자, 인류의 마지막 퇴로인 우주선 ‘누크호’의 탑승자 명단이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었다. 하지만, 명단 어디에도 장애인의 이름은 없었다. 불과 수백 년 전, 그들의 몸속에 든 에너지 물질을 찬양하며 ‘장애 해방’을 외치던 입술들은 이제 ‘효율’과 ‘현실’을 말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로 행성에서 발견된 풍부한 대체 자원을 근거로, 장애인들을 우주선에 태우는 것은 산소와 연료의 낭비라는 결론을 내렸다. ‘권리의 정상화’라는 핑계로 단행된 마지막 조치였다. 탑승권이 없는 자들에게 허락된 곳은 다시 우후죽순 생겨난 거대 수용 시설뿐이었다. 한때 그들을 ‘영웅’이라 부르며 길을 내어주던 시민들은 이제 명단에 든 제 이름을 확인하느라 바빴다. 그들은 휠체어에 앉아 우주선 정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승강기는 이미 폐쇄되었고, 우주선으로 향하는 통로는 오직 가파른 계단뿐이었다. 휠체어가 오를 수 없는 그 계단은 인류가 다시 세운 가장 높고 견고한 배제의 성벽이었다.

D-day, 땅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떨리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끝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비명 대신, 공포에 짓눌린 눈빛들이 공기 속을 채웠다. 곧이어 거대한 우주선의 엔진이 점화되었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는 굉음이 하늘을 찢듯 울려 퍼졌고, 붉게 타오른 화염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 빛은 남겨진 자들의 그림자를 길게, 끝없이 늘어뜨렸다. 한때 전 세계가 열광했던 보치아 공 하나가 먼지 쌓인 바닥을 굴러다녔다. 나는 우주선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도 데려가라고, 살려달라고” 목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눈이 떠졌다.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또각, 또각, 또각 시계 초침 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개꿈이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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