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종종 진실이 아닌 거짓을 말한다. 배고프냐고 물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이미 꽤 배가 고픈 상태이다. 많이 아프냐고 물을 때 이젠 많이 나아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환자 중 많은 수도 여전히 많이 아픈 상태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에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을 때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 불편한 게 있냐고 물을 때마저도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만, 그것이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은 묻는 이도 대답하는 이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상대가 어떻게 말하든지 관계없이 밥을 나누고 위로를 전하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생각해 보면 “배고파 죽겠어요. 밥 좀 빨리 주세요.” 하는 사람에게보다 “저는 괜찮으니, 식사는 천천히 해도 돼요.”라고 말하는 이에게 무엇이라도 빨리 먹을 것을 주고 싶었고, “저는 충분히 살만해요.”라고 말하는 이에게 더 간절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의 말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숨겨진 진심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말하는 이 또한 자신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려 주는 이에게 마음을 내어놓는다. 삶의 모든 순간을 직설로 채우는 이도 더러 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 중 다수는 돌려 표현하고 숨기듯 말한다. 어떤 이들은 답답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어느 틈에 그것을 예의라고 합의했다.
그런데 화를 내고 있는 이 앞에서 우리는 그 합의를 자주 잊는다. 사람들의 다툼을 보다 보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가 언성을 높여가며 오가지만, 결국 서로가 원하는 것은 의외로 다른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연인이나 부부의 싸움을 보면 잊고 있던 수년 전 사건까지 끄집어낸다.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나 요즘 많이 힘들어요.”처럼 차마 꺼내지 못한 말 속에 답이 있는 때가 많다. 제자 녀석들이 투덜대거나 수업에 성실하지 않을 때도 그들이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저에게도 관심을 주세요.”일 때가 많다.
길에서 사고가 난 운전자들의 다툼은 누가 옳은지 도로교통법을 논하는 것 같지만, 함께 탑승한 일행과 스스로가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바라는 마음과 경제적 부담이 최소한으로 발생하기를 원하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화가 났을 때마저도 직설보다는 돌려 말하기를 택하지만, 정작 상대는 배고프지 않다고 말하는 이를 대할 때와는 달리 그 이면의 마음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다. 내게 화를 내는 이에겐 반사적으로 경계의 태세를 갖추고, 전선은 그가 실제로 말하는 문장들에서 이루어진다. 다툼은 소모적인 논쟁이 되고, 실제로 원하는 것은 잊은 채 지지 않으려거나 이기기 위함만이 목적이 된다.
아래층 사는 아저씨가 층간 소음을 이유로 벨을 누르고 찾아왔다. 쿵쿵 울리는 소리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여러 가지 정황에서 그 원인은 우리 집이 아닌 듯했다. 여러 가지 근거들을 들어가며 우리 집이 명확한 소음의 근원지이고 그 소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기를 키우는 집이므로 그가 말하는 것 중 어느 정도는 우리 집으로 인한 것이 맞을 수 있었지만, 그의 주장 중 많은 부분은 틀린 것이거나 원인이 다른 집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모든 책임을 우리 집으로 단정해서 말하는 이에게 어느 틈에 화가 났다. 나도 모르는 새 그의 말 중 어느 부분이 틀렸는지를 반박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했지만, 내겐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설령 정확히 맞는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해 낸다고 해도 득이 될 것이 없었다. 그것은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대에게도 그랬다.
“시끄러우셨겠어요. 우리 아기가 움직일 때 종종 쿵쿵거렸나 본데 주의할 수 있도록 가르쳐 보겠습니다.” 정도가 그가 듣고 싶은 나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분명히 억울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가 내뱉고 있는 말 또한 그가 진짜로 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거나 과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조금 더 여유 있는 마음이 있었다면 난 “배고프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굶주린 이에게 했던 것처럼, 나의 이웃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실 아닌 거짓을 종종 말한다. 배고프고 어려울 때도 그렇지만 화가 났을 때도 그렇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는 화를 내는 이 앞에서도 그의 진심을 찾아내야 한다. 화내는 이에 맞서 더 큰 화를 내거나 잘못한 것을 논리적으로 지적해서 다툼을 승리로 마무리한다고 해서 내게 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힘드셨죠? 시끄러우셨죠? 제가 주의해 볼게요.”
화내는 이 앞에서도 침착하게 상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다툼을 줄이는 방법이고, 다툼을 줄이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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