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계곡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매번 여름 우리 가족 피서지는 계곡이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자라면서 바다를 동경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져 갔다. 파랗게 넘실거리는 파도와 쏴아 쏴아 물 부딪히는 소리,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뜨겁게 달아오른 하얀 백사장까지…
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성인이 되고 친구들 몇몇과 갔던 바닷가에서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그것도 모자라 늦은 밤엔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한동안 누워 있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 바다를 만나고 온 후엔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발밑에서 파도가 느껴지기도 하고 귀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바다 앓이를 했다.
지금도 “바다 혹은 산?”이라는 질문에는 주저 없이 바다를 말하고, 언젠가 살고 싶은 장소를 물으면 머릿속 가득 바닷가 마을을 떠올린다. 그렇지만 어릴 적 처음 바다를 만났을 때부터 온전히 바다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바다는 가까이 다가갔을 때 여전히 멋지긴 했지만, 덥고 뜨겁고 불편한 곳이기도 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모래는 맨발로는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따갑고 뜨거웠고, 푹푹 아래로 빠지는 모래밭은 신발을 신고 걷기에도 편하지 않았다. 몸을 식히려고 들어갔을 때의 바다는 좋았지만, 몸이 마르면서 여기저기 끈적하게 달라붙는 소금기는 씻어 내기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이들도 분명 바다를 동경하며 온 사람들이었을 테지만, 그런 이유로 바닷가엔 북적거리는 사람만큼이나 불평과 다툼도 많았다.
“물이 너무 차가워요.” “모래가 생각보다 거칠어요.” “날이 너무 뜨겁네요.” “이 소금기를 다 어떻게 씻어내죠?”
하며 불만을 쏟아내지만, 그건 그들이 진정 바다에 와 있다는 증거였고, 그 모든 것이 바다였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어 갈 때쯤에야 나는 진짜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다. 짜디짠 물이 혀끝에 닿을 때도, 끈적거리는 소금기와 서걱거리는 모래가 느껴질 때도, 겨울 바다의 칼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릴 때마저도 바다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내가 바다에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고, 그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는 바다였기 때문이다.
살면서 사람들과 다투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실망하기도 하는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대상은 나와 가까운 이들이다. 좋아했기에 더 서운하고 믿었기에 더 크게 배신감으로 다가오지만, 그것은 그와 내가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로 다른 이가 함께 살다 보면 바다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짠맛도, 뜨거움도, 끈적거림도 함께해야만 한다. 누구도 내 몸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일 수는 없다. 바다가 아름답기 위해서 소금도 뜨거움도 끈적거림도 필요한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그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몰랐던 그런 면도 필요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내가 그와 그만큼 가까워진 증거라고 여기면 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내밀한 모습까지 공유한 가까운 관계이다.
멀리서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바다의 작은 부분만 알 수 있지만, 진정 바다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몸도 담그고 모래에서도 뒹굴어 봐야 한다. 불편함마저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바다와 가까워진다.
사랑하는 이에게서 실망과 불편함이 느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고, 그것마저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사랑할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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