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필의 모두까기] 혐오는 결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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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속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결국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민주주의의 존엄까지 무너뜨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이미지 / 챗지피티 편집
▲스마트폰 속 혐오와 조롱의 언어가 결국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 그리고 민주주의의 존엄까지 무너뜨리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이미지 / 챗지피티 편집

[더인디고 = 무필 집필위원] 최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힙합 공연이 기획되었다가 취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고인의 서거일을 상징하는 티켓 가격을 책정하고, 서거 방식을 연상케 하는 표현을 소비하는 행태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혐오의 문화였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혐오라는 감각에 얼마나 무감각해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더욱 뼈아픈 것은 그 대상이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고인을 향한 모욕과 조롱이 반복될 때마다 일시적인 규탄 성명을 내는 데 그쳤을 뿐, 혐오를 공적 영역에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정치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 뒤에 숨어 책임을 미루는 동안, 혐오는 점점 더 정교하고 대담한 방식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혐오에 단호히 선을 긋는 것보다, 특정 지지층과 보수 종교 세력의 반발을 의식해 침묵하거나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온 정치의 계산도 자리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의 문제마저 표의 유불리로 접근하는 순간, 정치는 공동체의 존엄을 지키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마저 희화화되는 사회에서, 과연 누구의 존엄이 안전할 수 있겠는가.

이 방치의 후과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장 먼저 향한다. 혐오를 배설하는 문화가 ‘유머’나 ‘놀이’로 둔갑하는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탈시설을 요구하고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서 종종 ‘사회적 소란’ 정도로 취급된다.

그러나 권리를 요구하는 존재를 시민이 아닌 불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가장 약한 사람들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고인을 향한 혐오를 방치하는 정치와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을 방치하는 정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조롱받아도 괜찮다’는 신호가 공적 영역에서 용인되는 순간, 그 화살은 결국 가장 약한 곳을 향하게 된다. 고인의 명예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온전히 보호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분노와 반짝하는 규탄 성명이 아니다. 고인을 모욕하는 행위부터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까지, 그 밑바닥에 흐르는 혐오의 구조를 멈춰 세울 사회적 기준과 제도적 책임이 필요하다.

혐오는 아래를 향할 때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위를 향한 조롱과 모욕 역시 공동체의 존엄을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죽음을 희화화하는 사회는 결국 가장 약한 존재의 권리부터 무너뜨리게 된다.

이제 정치는 혐오를 방치하는 중립을 멈춰야 한다. 민주주의는 누군가를 조롱할 자유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책임 위에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mercy_jc@hanmail.net'
공자의 자절사 중 무필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정하지 않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필명 무필은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비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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