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보지 못하지만, 충분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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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사진 오른쪽)의 설명을 따라 작품을 마주한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예술을 새롭게 경험하는 순간을 담은 장면. / 챗지피티 이미지
▲도슨트(사진 오른쪽)의 설명을 따라 작품을 마주한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미술관에서 예술을 새롭게 경험하는 순간을 담은 장면. / 챗지피티 이미지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장애와 장애인의 사전적 정의는 신체 일부 또는 신체에 불편함이 있는 상태라는 의학적 판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장애는 다수인 일반이 공유하는 일상이나 문화의 공유가 제한된 상태이다. 실제로 어떤 질병이나 사고로 특정 장기를 절제하거나 일부 기능에 제한이 생기는 것이 그 자체로 일상생활의 불편함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근거 없는 차별과 배제는 신체의 건강 상태와는 상관없이 사회적 장애로 작동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보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더 큰 장애로 다가온다고 확신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볼 수 없는 눈을 이유로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어 버린 것들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미술관 관람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보는 것이 곧 감상이고 보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미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논리라면 나 같은 이에게 세상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별로 없다. 신호등의 본질은 색깔을 보여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건널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데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신호기가 추가될 때 비로소 그 가치는 모두에게 공유된다.

하얀 종이 위에 적힌 까만색의 글씨들도 다양한 디자인이 수놓아진 의상도 보지 못하는 이에게 의미 없다고 단정하는 이들은 그것이 가진 본래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점자로 변환된 글자는 내게 책이 전하려 했던 메시지를 조금의 다름없이 전달해 주고 내 몸에 걸쳐진 옷들은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이미지를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구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시각장애인에게 미술관 관람은 걷지 못하는 이에게 등산을 권하는 만큼이나 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진정 미술과 시각장애가 함께 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휠체어를 탄 이들이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하는 것이 그곳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는 나에게 미술작품과 연결해 주는 경사로를 놓아준다면 더 이상 미술관은 내게 제한된 공간이 아닐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시선 너머의 예술’은 한 명 한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시력을 잠시 나눠줄 도슨트를 연결해 주었다.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은 완벽하게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 수 있지만 멀쩡한 눈 가진 이들이라 하더라도 같은 작품을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완벽한 감상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작품의 세세한 점까지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설명과 나의 질문이 오가는 동안 나의 감상은 부족함이 없을 만큼 충분한 감동으로 차오른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큰 수조 속에 담긴 상어와 잘린 소의 머리, 죽은 나비들이 만들어간 스테인드글라스가 말하려 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나 나름의 감상으로 옮겨오는 데에는 도슨트 선생님의 작은 나눔으로 충분했다.

난 작품을 마주했고, 시각적으로 디자인된 작품은 책의 글씨가 점자로 변환되듯 도슨트 선생님의 목소리에 얹어졌고 작가가 전하려 한 생각들은 나의 고민으로 옮겨왔다. 난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보았다. ‘진실은 없지만 모든 것은 가능하다.’라는 전시의 카피 문구처럼 작품 감상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 어떤 감상도 가능함으로 열려있다. 두 시간여의 미술관 투어 동안 난 작가가 말하려 한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연결과 통제에 대해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국립 미술관의 전시회에 보이지 않는 나도 한 명의 온전한 관람객으로 존재했다.

장애는 보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상태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난 미술 감상을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법의 감상을 제한한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관을 장애 없는 공간으로 내어주신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위적 장애가 작은 생각의 변화들로 자유로움으로 되돌려지기를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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